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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스도 무너졌다, 12번홀 '인디언 저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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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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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 우승을 노리던 스피스의 꿈이 12번 홀에서 물거품이 됐다. 워터 해저드에 두 차례나 공을 빠뜨린 끝에 한꺼번에 4타를 까먹었다. 스피스는 “마지막 30분은 정말로 힘들었다. 다시는 이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오거스타 AP 뉴시스]

미국의 ‘골든 보이’ 조던 스피스(23)가 골프 역사에 남을 만한 역전패를 당했다. 11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벌어진 마스터스 최종라운드.

스피스, 뒤땅 샷에 공 두번 풍덩
5타 앞서다 4타 잃고 역전 당해

1931년 인디언무덤 발견된 자리
역대 대회서 기이한 현상 잇따라

3년 전 왓슨, 공 세번 빠져 10타
2000년 우즈도 트리플보기 악몽

3언더파 선두로 출발한 스피스는 6~9번 홀까지 4연속 버디를 하면서 2위에 5타나 앞선 합계 7언더파를 기록 중이었다. 그러나 10, 11번 홀 연속 보기를 하더니 12번 홀에선 ‘쿼드러플(Quadruple) 보기’ 로 침몰했다. 쿼드러플 보기란 기준타수보다 4타를 더 기록한 것을 말한다. 파3인 이 홀에선 흔히 말하는 ‘양파+1’ 타를 친 셈이었다. 결국 마지막날 1오버파를 기록한 스피스는 합계 2언더파로 챔피언 대니 윌렛(28·잉글랜드)에 3타 뒤진 공동 2위를 차지했다.

역대 마스터스에서 가장 유명한 역전패는 1996년 그렉 노먼(61·호주)이 6타 차 선두를 달리다 닉 팔도(영국)에게 덜미를 잡힌 사건이 꼽힌다. 이날 스피스도 노먼에 못지않은 뼈아픈 역전패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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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스는 후반 첫번째 홀인 10번 홀부터 보기를 하며 삐걱거렸다. 이어 그는 ‘아멘 코너’의 첫째 홀인 11번 홀에서도 보기를 범했다. 그리고는 파3의 12번 홀(155야드)에서 공을 두차례나 물에 빠뜨린 끝에 대형 사고를 쳤다. 9번 아이언을 잡고 보기좋게 티샷을 했지만 그는 공을 그린 앞 워터 해저드에 빠뜨리고 말았다. 벌타를 받고 68야드 거리에서 한 그의 세 번째 샷은 아마추어들이 흔히 하는 ‘뒤땅’ 샷이었다. 이번에도 그린 근처에도 가지도 못하고 공이 물에 빠졌다. 또 다시 벌타를 받고 친 샷은 그린 뒤편 벙커에 빠졌다. 결국 6온에 1퍼트를 하면서 순식간에 4타를 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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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마스터스 12번 홀에서는 기이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다. 2000년 마스터스 1라운드 당시 타이거 우즈(40·미국)는 140야드의 이 홀에서 8번 아이언으로 샷을 했다가 공을 물에 빠뜨려 트리플 보기를 했다. 우즈는 결국 5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반면 프레드 커플스(61·미국)는 1992년 대회 당시 당연히 물로 굴러 내려가야 할 공이 경사지에 멈춰 우승할 수 있었다. 두 차례나 그린 재킷의 주인공이 됐던 버바 왓슨(36·미국)은 2013년 물에 공을 세 번이나 빠뜨린 끝에 10타를 치면서 우승 경쟁에서 탈락했다. 마스터스 한 홀 최고 타수(80년 톰 와이스코프·13타)도 바로 이 홀에서 나왔다.

12번 홀은 오거스타에서 가장 아름다운 홀로 꼽힌다. 그런데 이 홀에서 대형 사고가 심심찮게 터지는 것은 그린이 작고, 앞에 개울이 있는데다 벙커 3개가 전략적으로 배치됐기 때문이다. 짧으면 물에 빠지고, 길면 벙커에 빠진다. 마스터스에 12차례 출전했던 최경주(46·SK텔레콤)는 “12번 홀에 서면 압박감이 든다. 혼란스러운 바람에 그린의 경사와 빠른 스피드가 어우러져 재미있는 상황을 만든다”고 말했다.

선수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바람이다. 김경태(30·신한금융그룹)는 “12번 홀 티잉그라운드에는 뒷바람이 부는데 정작 그린 근처에는 강한 맞바람이 분다. 그걸 아는데도 티잉그라운드에서는 뒷바람이 부니 바람에 대한 확신이 없고, 스윙도 자신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12번홀이 자리잡은 곳이 오거스타에서 가장 낮은 지대라 바람이 소용돌이 친다는 분석도 있다. 1931년 오거스타 골프장을 만들 때 12번 홀 그린이 있던 자리에서 인디언의 무덤들이 발견됐다는 일화도 있다. 그래서 호사가들은 12번홀의 미스터리는 인디언들의 영혼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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