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 샤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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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꼭 껴안은 남녀가 헤엄치듯 하늘을 날아간다. 식탁 앞에 앉은 한신사의 머리가 몸통과 떨어져 술병 쪽으로 향하고 있다. 초록색의 돼지, 분홍빛의 소, 거꾸로 공중에 둥둥 떠다니는 집들. 우화같은 일들이다.
이것은 「마르크·샤갈」의 그림 장면들이다. 이런 얘기가 있다.
러시아혁명 무렵 그는 태생지인 백러시아의 비테프스크지방에 미술학교를 세웠다. 「레닌」 이 그 소식을듣고 이 학교 개교 경축행사를 갖게했다. 이때 「샤갈」 의 그림을 본혁명투사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저 그림이「마르크스」 「레닌」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거요?』-.
1922년 4월 그는 러시아를 떠나고 말았다. 『프롤레타리아예술은 우리에게 아무 것도 준것이 없다. 다만 사람들의 마음을 갈기갈기찢어 놓았을 뿐이다』 1966년 12월 모스크바에서 옅린『19∼20세기 수채화전』엔 비로소 「샤갈」 의 그림도 소개되었다. 그러나 그 시간은 72시간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었다.『어떤 그림이라도 좋으니 거꾸로 놓고 보게. 그러면 진가를 알수 있네』 핏줄로 치면 유대인, 태어난 곳으로 보면 러시아사람, 국적으로 따지면 프랑스인.
1977년 7월 그가 미수를 지나 90세를 맞던해 뉴스위크지 기자가 프랑스의 니스로 그를 찾아갔다.
-죽음에 직면하는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런 질문일랑 하지 말아요. 내앞엔 수백만년이 있었고, 내 뒤에도 그럴겁니다. 나의 답변은 내 그림 속에 담겨 있읍니다』 -근년의 작품이 많이 변했다고생각하세요?
『그렇지요. 요란한 목소리로 노래하는 사람의 노래는 예술이 아닙니다. 조용히 숨을 죽이고 흐느끼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깊은 공감을 줄수 있읍니다』 -성서를 주제로 한 작품이 많은 이유는?
『나는 성경을 좋아합니다. 신앙으로 보다는 시로서. 그것은 기막히게 아름다운 시의 세계입니다』 그는 파리에 삶의 터전을 잡으면서 「아폴리네르」같은 시인들과 깊이 사귀었다.
화풍으로는 입체파의 영향을 받아 포름을 깨는「데포르마시옹」의 아름다움을 환상적으로 그렸다. 그의 그림은 그림이기에 앞서 눈으로 보는 시같은 무드가 있다.
바로 그것이 그의 그림을 많은사람들의 마음 속에 남게한 힘인지도 모른다.
28일 남불에서 전해온 외신은 그의 계음을 앝려주고 있다. 그가 생존해 있었다는 사실조차 신기하게느껴지는데….향년 97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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