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식 勞使모델 불황땐 경기회복 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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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경제기적의 토대가 됐던 네덜란드형 노사관계 모델이 경기침체기에는 되레 기업들의 발목을 잡아 경기회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네덜란드식 노사관계는 최근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이 우리나라에 도입할 만한 제도라고 말해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네덜란드의 '화합형 노사관계'가 불황 때 기업의 고용조정을 가로막고 있다고 8일 보도했다. WSJ는 특히 경직된 노사관계가 최근 불황의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네덜란드 중앙은행은 이 나라 경제가 1982년 이후 처음으로 올해 마이너스 성장(-0.4%)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네덜란드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도 전년보다 43%나 급감한 2백90억달러에 그쳤다.

네덜란드 정부 통계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의 13.5%인 95만명이 '환자'나 '장애인'이다. 이처럼 '몸이 불편한' 노동자가 많은 것은 일부 사용자들이 멀쩡한 노동자를 환자나 장애인으로 분류하기 때문이다.

기업이 경영사정이 나빠져도 정규직 노동자를 해고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규직 노동자에 포함되지 않는 환자나 장애인으로 채용하는 편법이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환자.장애인 노동자 비율은 현재 유럽에서 가장 높다.

네덜란드 노동자의 주당 노동시간은 31시간으로 유럽에서 가장 적다.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20명 이상 해고할 때 반드시 노사협의를 거쳐야 하고, 한 지역에서 20명 이상을 해고할 수 없으며, 해고할 때는 나중에 입사한 종업원을 우선 내보내야 한다.

이 때문에 정보기술(IT) 업체인 핑크로케이드는 8천명의 종업원 가운데 7백명을 해고하는 데 1년이나 걸렸다. 이 회사는 노사협의를 피하고 유능한 젊은 직원을 내보내지 않기 위해 19명씩 해고하는 편법을 사용했다.

지난해 네덜란드의 투자은행인 ABN 암로는 IT 부문을 EDS에 아웃소싱하기로 하고, 직원 2천명을 재배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노조와의 협의를 거치는 데만 3개월 이상을 허비했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에 ▶노동계의 임금 인상 자제 ▶감세 등 정부의 고용주 부담 줄여주기 ▶고용주의 고용 증대와 채용.해고시 노사협의 약속 등을 골자로 한 노사정 협약을 마련했다.

이에 힘입어 저임금을 기반으로 수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90년대 말에는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높은 연간 3%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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