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천인성 기자의 교육카페]오락가락 입시제도…섣불리 바꿔 피해 보는 학생은 누가 책임지나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저는 1993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4년 3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재수를 했거든요. 불행히도 한 해 사이 대입이 급변했습니다. 93 대입은 학력고사가 치러진 마지막 해, 94 대입은 수능이 도입된 첫해였죠. 1년 새 확 달라진 대입을 치렀으니, 저 같은 재수생의 혼란과 불만이 오죽했을까요.

학생부 종합 확대에 정치권 '수시 대폭 축소' 공약

'일반고 불리' 단정 어려워, 신중히 접근해야

교육 기자가 된 지 5년째입니다. 처음 입시 기사를 쓸 때 당혹감이란 급변한 대입을 바라보는 재수생의 심정과 비슷했죠. ‘한 줄 세우기’에서 ‘여러 줄 세우기’로 바뀐, 복잡한 대입을 이해하고 기사로 옮기는 건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죠. 학생부 교과, 학생부 종합, 논술, 특기자, 수능…. 매년 조금씩 바뀌는 ‘디테일’까지 기사에 담으려면 교사와 전문가에게 묻고 또 물어야 합니다.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의 교육 공약을 살폈습니다. 가장 눈에 띈 건 ‘수시모집 비율을 현재 70%에서 20%로 축소하자’(국민의당)는 공약이었습니다. 수시전형 확대가 사교육을 확대시키고 과도한 입시 경쟁을 유발하니 입시를 단순화하자는 주장입니다.

공감하는 분이 적지 않더군요. 학력고사 세대인 학부모가 특히 그렇습니다. 저도 솔깃했습니다. 그땐 시험 점수 하나로 대학 진학이 가능했습니다. 딱 부러지는 점수로 합격·불합격이 갈라졌으니 공정하고 투명해 보이죠. 사교육도 덜했던 게 사실이지요.

그런데 진학 교사들 중엔 고개를 갸우뚱하는 분이 많더군요. “수십 년간 달라진 학교, 입시 지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수시 축소, 정시 확대를 주장하는 논거 중 하나는 정시에 비해 수시가 일반고에 불리하다는 겁니다. 그렇게 단정할 수 있을까요. 2016 서울대 입시에서 수시 합격자 중 일반고 출신은 50.6%, 정시에선 47.5%입니다. 적어도 서울대 입시에선 정시가 일반고에 더 불리하죠. 전년과 비교하면 수시가 아니라 정시에서 일반고 합격자가 줄었고요.

정시가 계층 격차를 덜 반영한다는 주장에도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강남 등 교육특구 고교는 수능 1·2등급 학생이 많죠. 그런데 이 중 상당수가 재수생입니다. 학원가에선 ‘재학생은 수시, 재수생은 정시’라는 공식이 돕니다. 안연근 잠실여고 진학부장은 “재수할 만큼 부유한 학생이 많은 학교가 정시에 유리하다. 정시가 확대되면 비강남 일반고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부산의 한 일반고 교사도 “지방은 정시는 포기하고 수시 중심으로 대입을 대비한다. 수시가 줄면 지역 격차가 더 커진다”고 우려했고요.

공교육 정상화의 관점에선 어떨까요. 강북의 일반고 영어 교사는 “지금도 고3은 교과서 대신 EBS 교재로 반복한다. 수시가 줄면 고1·2까지 그렇게 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묻더군요. 인공지능(AI) 시대에 5지 선다형 문제에 맞춘 암기식 교육이 바람직하냐고요. 물론 현행 수시에 여러 문제점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급작스레 학력고사식 ‘한 줄 세우기’로 돌아가는 게 해법일까요. 내년 대선에는 입시 개편을 둘러싼 논의가 한층 활발해지겠지요. 수백만 학생·학부모가 영향받는 대입만큼은 정치권도 신중히 접근했으면 합니다.

천인성 교육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