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장 낙선생의 자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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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어느 국민학교 반장선거에서 l표차로 낙선한 어린이가 자살했다.
청소년의 자살이 만연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세계적 추세라고는 하지만 어린이들이 그들의 미래를 포기하고 간단히 극한적인 선택을 하고마는 사태를 새삼 격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중요성은 반장선거에서 낙선한 충격이 그처럼 컸다는 사실로 좁혀 볼 수 있다.
도대체 「반장」이란 것이 무엇이길래 어린이들이 목숨을 버릴 정도로 가치를 부여하는 「자리」가 되었는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면 반장은 학급을 대표하는 학생일 뿐이다. 학급의 학생가운데서 담임선생을 도와 그 학급의 일을 말아보는 책임학생이다.
따라서 우리사회의 학교교육 현실에선 담임선생이 모범생을 골라 임명하든가, 학급의 친구들이 선거로 뽑는 것이 관행이 되어왔다.
그러나 근년 사회의 부조리풍조가 학교교육에 밀려들면서 그 관행이 변질되어 교육적으로 왜곡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반장의 주임무는 담임의 일을 돕는데 있지만 그것이 학생을 통솔하는 감투자리로 인식되면서 대부분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남의 윗자리에 있어봐야 자존심이 길러지고 그래야 혹심한 경쟁에서 이길 수 있으며 커서도 출세와 영달을 얻는데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어느덧 학부모들 사이에서 미만하게 되고있다.
그 결과 학급의 반장선거에는 물론 전교어린이회장 등 자리를 놓고 학생들 대신 학부모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다는 불쾌한 소리도 들린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일부 교육자들이 학급운영상 혹은 학교운영상 불가피하다는 구실을 붙여서 선택적으로 누구를 공개적으로 지원한다는 사실이다.
그런 선생님들의 행동을 눈앞에 보면서 한창 자라나고 있는 어린이들이 가슴에 멍이 들고 학우를 미워하며 선생님들을 불신하게 될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같은 비교육적 작태들이 전국의 국민학교는 물론 중·고교에까지 미만하게 되었다면 실로 우리의 학교교육의 위기, 나아가 우리사회의 병적 상황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때문에 최근 일부 학교에서 그같은 폐해를 일소하기 위해 제도적 개선에 나서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자기 손으로 자기의 대표를 뽑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를 어렸을 때부터 몸에 익히는 교육훈련과정이 된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국민학교의 저학년과정에선 모든 어린이에게 공평한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학급어린이 모두를 돌려가며 반장을 시키는 「반장당번제」의 적용이 더 교육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 어린이의 자살은 개인적으로 극복해야할 문제라곤 하겠으나 사회가 제도개선을 통해 문제의 해소에 성심껏 노력해야할 과제를 던지고 있음을 모두 깨달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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