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참여는 불교 세계화에 기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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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여름비에 촉촉이 젖은 지리산 실상사(주지 도법 스님). 5월 말 새만금 살리기 3보1배 수행을 마치고 무릎에 이상이 생겨 치료를 받다 지난 7일 퇴원한 수경 스님을 문안하러 법륜 스님과 박광서(서강대) 교수가 서울에서 내려왔다.

실상사는 초록 세상이다. 연꽃잎이 무성한 호젓한 호수를 끼고 돌아가니 극락전이 나온다.

연골 수술을 받아 다리가 불편한 수경 스님이 반갑게 손님을 맞았다. 스님은 네댓 사람이 들어가면 꽉 차는 작은 공간에서 몸을 추스르는 중이다. 도법 스님도 동석했다.

수경.법륜 스님과 박교수는 시쳇말로 불교계의 대표적 '운동권'이다. 물론 1980년대식 민주화 투쟁은 아니다. 불교의 사회적 소임, 즉 고즈넉한 산사의 불교가 아닌 급박한 현실과 함께하는 불교를 강조한다.

북한산.새만금 살리기의 수경 스님, 인도.북한돕기 사업으로 막사이사이상을 탄 법륜 스님, 90년대 이후 한국불교의 개혁을 주창해온 박교수다. 그들이 오는 20~25일 경기도 용인 삼성휴먼센터 등에서 열릴 2003 참여불교세계대회(www.inebseoul.org) 공동조직위원장을 맡은 건 어쩌면 예정된 일인지 모른다.

대화는 수경 스님의 근황으로 시작됐다. 그런데 스님은 말을 아꼈다. 국민적 관심을 모은 3보 1배가 끝난 후 언론 접촉을 삼갔던 그는 묵언으로 일관했다. 말은 또 다른 오해를 빚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도법 스님이 거들었다. "상처를 받은 것 같다. 본인의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 우리 사회의 흐름, 삶의 방식을 근원적 입장에서 참회하는 수행을 했으나 새만금을 반대하는 것으로만 비쳤다. 대립 구도를 부추긴 것으로 이해된 것이다."

하지만 법륜 스님은 "자기를 희생해 대중을 감동시켰다. 시민운동의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고 평가했다. 박교수도 "수행의 새 가능성을 보여주었다"고 공감했다.

참여불교세계대회는 한국에서 처음 열린다. 16개국 1백여명의 불교 활동가가 모여 현대적 수행 방법을 모색하고, 환경.평화.인권.여성 등 21세기 현안에 대한 경험.해법을 공유하는 자리다.

89년 태국의 술락 시바락사 박사, 일본의 데루오 마루야마 스님이 중심이 돼 참여불교국제네트워크(INEB)를 창립한 이후 주로 동남아에서 개최됐다.

한국에서도 참여불교 전통은 강한 편이다. 멀게는 민중과 동고동락했던 신라 원효대사, 가깝게는 80년대 민중불교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불교의 보다 과감한 개혁을 주장했다.

박교수가 말했다. "한국불교가 옛 수행 전통을 잘 간직하고 있다지만, 그건 자랑할 게 못된다. 사회는 사회, 불교는 불교, 둘의 만남이 빈약했다. 동남아에서 불교는 전쟁.폭력.빈곤 등에 적극 발언해왔다. 또 티베트 승려는 13년 수행 기간 중 4년간 과학을 배운다. 우리는 불교의 현대화.세계화에서도 뒤진다. 달라이라마나 틱낫한과 견줄 만한 스님이 없다."

이에 법륜 스님은 이렇게 얘기를 이었다. "한국불교는 부처의 근본 가르침에서 벗어난 측면이 있다. 삶.대중으로부터 유리돼 신비적.심리적 종교로 치우친 감이 있다. 또 상당 기간 권력과 밀착돼 사회에 침묵했다. 부처의 가르침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도법 스님이 받아쳤다. 진정 '참여'라는 수식어가 필요하느냐는 것. 애당초 실천 종교인 불교에 참여를 붙이면 또 다른 분열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계했다. "부처는 전쟁터에 나가 이해 당사자를 조정했다. 살인범마저 제자로 삼았다. 내면 불교와 참여불교를 가르는 것 자체가 오류다."

박교수는 "참여불교가 추구하는 것도 수식어가 없는 불교"라고 수긍하면서도 "한국불교의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일례로 당면한 인류 문제에 대한 발언에서도 타 종교에 뒤진다"고 반박했다. 도법 스님도 "빈곤.난민 등 국내외 현안에 대해 불교가 조리있게 대응한 경험이 적다"고 인정했다.

어느덧 실상사에 깊은 어둠이 깔렸다. 산사의 열띤 설전이 한국불교의 앞날과 어떻게 연결될지…. "동남아의 참여 전통과 한국의 수행 전통이 결합해 불교의 본뜻을 찾을 것"이라는 법륜 스님의 마무리가 희망을 품게 했다.

실상사=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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