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엔 친구끼리 살고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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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한 세대 전 노후생활은 자녀에게 의탁하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지금은 이 같은 의식이 당연하게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84년 갤럽여론조사에 따르면 60세 이상 노인들은 대부분 아직 자녀와의 동거를 희망하고있으나(조사대상 1천4백27명 중 83.3%) 84년 중앙일보의 국민의식조사(각 연령층 포함 1천5백80명 대상)에서는 노후에 자녀와 함께 살겠다는 희망을 나타낸 사람은 21.1%에 지나지 않았다.
최근 현대주부들의 노후생활에 대한 의식조사를 위해 각 연령층 50명의 주부(서울거주)에게 전화문의를 한 결과 특히 30대 주부들은 노후 자녀와의 동거는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
이 같은 경향 때문에 최근엔 젊은 연령층의 노후생활에 대한 설계가 상당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아직 젊은 연령층이지만 부부모임이나 친구끼리의 모임에서 가끔 노후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적어도 내 주변의 친구 가운데 노후에 자녀와 함께 날것을 기대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친구끼리 또는 부부모임에서 지금부터라도 공동으로 돈을 조금씩 모아 여생을 같은 세대끼리 보낼 것을 계획하고 있어요.』
30대의 주부 박미경씨(31·서울구로구 독산동)는 21세기엔 아마 같은 세대끼리의 노후생활이 보편화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아직 우리 나라에는 시설 좋은 유료 양로원이나 노인 홈이 마련돼 있지 않다. 그 때문인지 중산층 가정의 부부나 또는 주부들 사이에 노후를 위한 공동 장소에 대한 관심이 높다. 전화문의를 받은 30, 40대 주부들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마음 통하는 같은 세대끼리의 노후 공동장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10여명이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40대 주부 김명인씨(46·서울마포구 서교동)는 고등학교 동기생 3명의 부부가 공동출자로 서울 근교에 땅을 사두고 공동 농장을 위해 계속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
채명자씨(42·서울강남구 청담동)는 몇 년 전 남편 친구들끼리 노후를 위한 공동적금을 시작했었는데 회원들의 이민, 지방전근 등으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고 했다.
노후를 위한 공동계획을 하려면 보다 철저한 방법을 마련해야될 것이라는 채씨의 경험론이다.
노후를 위한 보험도 상당히 인기가 높다. 전화문의를 받은 사람 가운데 반 이상이 노후를 위한 보험에 가입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최장수국으로 꼽히는 일본에는 「숙년에 시작한다」는 풍조가 있어요. 50세가 되어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두 번 사는 기분으로 나이 들어서까지 할 수 있는 뭔가를 계획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청자씨(43·서울강남구 청담동)는 최근 주부들 사이에 일고 있는 평생교육열이 모두 노후를 위한 대비가 아니겠느냐는 의견을 말해 준다.
김영심씨(32·이대학보사근무)도 60, 70대가 되어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만들어 놓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는 의견이다.
김씨가 대학원에서 유아교육을 공부하고 있는 것도 「노후에 무엇을 할까, 그리고 사회가 나에게 무엇을 기대할까」를 생각해본 결과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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