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인사들의 동향과 명당의 표정|경칩과 함께 온 봄소식…해금정가 부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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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만4년 1백21일간 정치활동이 규제됐다가 마지막으로 풀린 14명 중 구여권은 6명, 구야권은 8명이다. 원래 미해금자는 15명이었으나 구야의 박성철 예비역해군소장이 지난1월30일 타계함으로써 14명이 된 것.
14명중 구야권 8명과 김창근 구공화당정책위의장은 민주화추진협의회의 멤버로 이른바 장외 정치권내에 있었지만 구여권은 거의 정치활동을 중단하고 사업이나 해외여행 또는. 은거생활을 해왔다.
○…이들이 최종규제자로 묶인 사연도 가지가지다.
이길 사건의 이철희씨나 추행스캔들의 성낙현씨는 현실정치에 미칠 영향보다는 대국민이미지 때문에 묶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후낙 전정보부장은 이른바 권력형부조리가 묶인 명목이 된 것 같다.
오치성 전 내무장관은 오랜 도피생활과 정치적 성향 때문에, 김창근씨는 민추협관련이 원인이라는 얘기다.
이번에 풀린 사람 중 김덕룡 민추협 기획조정실장은 83년5월 김영삼씨의 단식사건과 관련한 활동으로 정치 피규제자 중 유일하게 정치풍토쇄신법에 의해 구속돼 1백일간 구류 중 보석으로 풀려났으며 이철희씨는 82년4월 구속되어 15년간의 형확정을 받고 현재도 복역중이다.
현재 김종필 전공화당총재와 오치성씨는 각각 미국에 체류 중인 것을 비롯, 김대중·김창근·이후낙씨가 신병치료·연구·여행 등으로 각각 미국에 장기 체류했거나 방문했었다.
오치성씨는 5·17이후 비리혐의를 받고 수배를 받았으나 2년 반 동안 도피생활을 하다가 83년 말 당국과의 막후절충에 의해 잠적생활을 청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후낙씨는 84년4월 부부가 구미를 여행한 것을 빼고는 주로 광주군 도평리에 있는 자신의 가마 도평요에서 도자기제작에 전념해오고 있다.
9년 전부터 시작한 백자제작기술은 아마추어솜씨를 넘어 전시회까지 열었다. 최근 미국에 있는 막내의 결혼식에 참석키위해 부부가 출국했다.
오치성씨는 82년말 2년 반 동안의 도피생활을 끝낸 후 12대 출마를 위해 지역(포천-연천-가평)주민들과 한때 활발히 접촉했으며 84년 중반 민추협지원방안을 도모한 적도 있다는 얘기.
오씨는 지난해 수학차 도미해 지금까지 머무르고있다.
김창근씨는 독서와 바둑·골프 등으로 소일해왔으며 81년과 83∼84년 두 차례에 걸쳐 도미해 미버클리대에서 중·소관계 등 국제문제를 1년6개월여 연구하기도 했다.
84년 구여권인사로는 드물게 운영위원으로 민추협에 참여한 김씨는 『선거가 지난 다음에 푸는 것은 고약하다』고 토로하고 『민추협활동을 통해 이 나라 민주화에 보탬이 되는 길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구여권의 민족중흥동지회에는 참여치 않고 있는 김씨는 앞으로의 진로 설정에 대해 『현재의 여건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지 않느냐』
『옛날 계파대로 뿔뿔이 헤어져 정권이나 넘봐서는 안될 것이다』라는 등의 말로 구야권과 행동을 같이하는 정치재개를 시사했다.
성낙현씨는 낚시를 자주 나가면서 경영하는 회사 일에 몰두하고 있다.
○…동교동계의 참여파 막후사령탑으로 민추협조직에 참여, 공동의장권한대행으로 활동해온 김상현씨는 『정당생활복귀와 신민당입당은 당연하나 그 시기는 선배·동지들과 협의,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김씨는 유신이후 실형선고로 정치활동이 중단됐고 아직 형집행정지상태가 되어 형실효선고 및 복권이라는 두 고비가 남은 셈. 그는 동교동계의 신민당참여에 중요역할을 담당했고 상도동 측과의 이해조정에도 수완을 보였다.
홍영기 전의원(3선)은 『현재로서는 신민당에 당장 들어가 현실정치에 뛰어들 생각이 없고 앞으로 김영삼씨 등과 행동을 같이하겠다』고 말했다. 홍씨는 같이 풀린 김명윤 전의원과 함께 변호사로서 구속학생이나 재야인사들의 변론 및 민추협상임운영위원으로 활발하게 활동해왔다.
김명윤씨는 『나에게는 규제법이 있으나마나 별 의미가 없었다』며 『국회의원 하겠다는 생각은 없고 좋은 세월이 되도록 하는데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고희를 넘긴 김윤식 전의원은 예전부터 해오던 순수재야 인사들과의 서클활동을 계속하면서 민추협에도 처음부터 참여했다. 그는『현실정치에 간여할 생각이 없으며 선비도를 지켜 깨끗이 살아가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예비역준장출신인 윤혁표씨는『두 김씨와 정치진로를 같이 택하겠으며 국민의 편에 서서 민주주의 회복에 진력하겠다』고 피력. 민추협상임운영위원인 윤씨는 전략관계서적과 세계사관계독서에 열중해 왔다고 한다.
김영삼씨 비서실장인 김덕룡씨(민추협기획조정실장)는 『두 김씨와 함께 풀린 것이 마음 편할 뿐이고 피규제 중 고향 이리합산의 친지들 격려를 특히 고맙게 생각한다』며 『앞으로 사후적 정치보복이 없어져 이번 풀린 사람들이 이 나라의 마지막 해금자가 되기를 바란다』 고 말했다.
김씨는 『앞으로의 진로는 선배·동지들과 협의해 결정하겠다』며 『이번을 계기로 좀더 폭넓은 민주화를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해금정국에 대비하는 각 정당들은 어느 때보다 부산한 모습들. 해금에 앞서 민정당은 4일부터 당이 주도적으로 당사자들에게 해금사실을 통보하는 등 바쁜 움직임이다.
이상재 차장과 현홍주 정책조정 실장이 동교동과 상도동을 4일 다녀온 데 이어 5일 이한동 사무총장은 야당 부총재들에게 전화로 해금을 알렸고 이종찬 총무도 윤보선·최규하 전대통령을 예방해 사전 통보.
노태우 대표위원은 5일 낮 취임 후 처음으로 가진 출입기자들과의 오찬모임에서 4일 하오 청와대로 올라가 약1시간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을 숨김없이 털어놓고는 80년 초봄의 정치혼란기를 회고하면서 『국민들이 그 같은 혼란의 재발을 결코 용납치 않을 것으로 믿는다』 고 자제를 기대.
○…신민당은 5일에 이어 정무회의·총재단회의를 6일에도 연거푸 열고 두 김씨의 해금에 따른 당체제 정비 방안을 협의, 조기전당대회소집으로 의견을 집약.
6일 총재단회의는 두 김씨의 영입 및 상임고문추대협의를 하고 이민우 총재 등 총재단이 김대중씨 자택을 방문해 이 같은 뜻을 전달.
신민당은 특히 김대중씨 등의 사면·복권을 정부에 촉구키로 하고 이의 실현방안을 수립키로 결의.
중앙당사에는 평소보다 2,3배나 많은 당원들이 몰려와 두 김씨가 거취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를 두고 설왕설래하는 등 한층 부산스런 모습.
○…민한당은 양 김씨의 인력에 끌린 일부 당선자들의 이탈 움직임을 우려.
김준섭 전당대회준비위원장은 6일 『당선자들과 일부낙선자들이 양 김씨 댁으로 인사하러 다니면서 적당한 명분을 찾아 탈당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돌고 있지만 당체제정비전에 경솔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걱정 섞인 분석.
당권경쟁자인 조윤형씨는 최근 원외지구당위원장들과의 잦은 접촉을 통해 『김대중·김영삼씨 등 해금되는 재야지도자들과의 유대관계 등을 고려해 대화창구가 될만한 사람을 당수로 추대해야된다』고 해금과 관련해 자신이 당수적임자임을 은근히 홍보하는 형편.
신상우·황낙주씨 등은 해금에 앞서 5일 만나 해금에 따라 정국이 급변하는 마당에 당권경쟁이나 격심하게 벌이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통합추진을 촉진키 위해 당결속을 다짐하는 뜻에서 집단지도체제형식이 바람직하다고 주장.
○…국민당은 해금 후 구여친목단체인 민족중흥동지회와의 교섭에 1차적인 관심.
당 간부들은 이번 해금이 국민당세 확장에 『최소한 마이너스효과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특히 김종필씨의 거취에 신경.
이만섭 총재권한대행은 『JP(김씨)가 입당한다면 무조건 환영』이라며 『그의 귀국 후 언제 어디서고 만나 입당문제를 허심탄회하게 협의하기를 원한다』고 피력. <이수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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