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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성매매 처벌 정당…강압적 성매매와 본질 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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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성구매자를 처벌하면서 성판매자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한 성매매 공급이 더욱 확대될 수 있다. 또 포주 조직이 불법적 인신매매를 통해 성매매 시장으로 유입된 여성에게 합법적 성판매를 강요하는 등 성매매 형태가 조직범죄화될 가능성도 있다.”

헌법재판소가 이 같은 이유 등으로 성매수자와 성판매자를 처벌하는 규정을 담고 있는 ‘성매매알선행위처벌법’(성매매특별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31일 결정 선고했다. 성매매를 한 사람을 1년 이하의 징역과 300만원 이하의 벌금·과료 등에 처하도록 한 이 법 21조 1항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에서다.

“성 상품화 않는 게 공동체의 가치”
헌재 재판관 9명 중 6명 합헌 의견

2013년 제기돼 3년간의 심리 끝에 나온 이번 결정에선 헌재 9명의 재판관 중 박한철 헌재 소장을 포함한 6명이 합헌 의견을, 강일원·김이수 재판관이 일부 위헌, 조용호 재판관이 전부 위헌 의견을 냈다.

이번 사건은 2012년 7월 성매매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성 김모(44)씨의 신청으로 서울북부지법이 이듬해 1월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하며 시작됐다. “착취나 강요 없는 자발적 성매매까지 처벌하는 것은 국가 형벌권을 최후 수단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을 벗어난 것이고, 성인 간의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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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는 이날 결정문에서 성매매 형사처벌의 필요성부터 지적했다. 헌재는 “사람의 성을 수단화·상품화하지 않는 것은 우리 공동체가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라며 “최근 우리 사회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중시하는 추세지만 그것이 성을 사고파는 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적시했다.

헌재는 또 “접대문화 등 성매매에 관대한 우리 사회 인식으로 볼 때 성매매를 형사처벌함으로써 달성되는 공익적 가치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보다 크다”고 했다. 헌재는 “자발적인 성매매라도 자신의 신체를 경제적 대가나 성구매자의 성적 만족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만큼 본질적으로 강압적인 성매매와 다르지 않다”며 “이를 형사처벌하도록 한 현행법의 입법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생계형 성매매는 합법화해야 한다’는 김씨 주장에 대해서도 헌재는 “빈곤층·취약계층이라고 해서 모두 성매매에 종사하는 것은 아니며 자발적 성매매를 합법화하면 오히려 여성을 성매매업에 고착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법상 선불금 등으로 인한 성판매자를 ‘피해자’로 형사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는 점도 합헌의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성매매 여성에 대한 차별과 낙인, 기본적 생활 보장, 인권침해 문제는 성매매를 노동으로 인정하거나 성판매를 비범죄화해 해결할 게 아니라 국가와 사회가 더 많은 투자를 통해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성구매자와 판매자를 동일한 법정형으로 처벌하도록 한 부분에 대해서도 헌재는 “어느 한쪽만 처벌하면 성매매를 근절할 수 없어 적절하다”고 했다. 반면 ‘일부 위헌’ 의견을 낸 강일원·김이수 재판관은 “경제적 우위에 있는 성구매자와 사회적 약자인 성매매 여성을 동일하게 형사처벌하는 현행 법은 위헌”이라고 했다.

‘전부 위헌’ 의견을 낸 조용호 재판관은 “성매매는 본질적으로 성인 간의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것”이라며 “생계형 성매매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매매 여성이 등장하는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사례로 들며 “국민에 대해 최소한의 보호 의무를 다하지 못한 국가가 오히려 이들을 형사처벌하겠다는 것은 난센스”라고 강조했다. 또 “특정인을 상대로 한 축첩·현지처 계약이나 스폰서 계약은 처벌하지 않으면서 불특정인을 상대로 한 성매매만 처벌하는 것은 평등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성매매특별법은 2004년 9월부터 시행된 ‘성매매알선행위처벌법’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법’을 통칭하는 것이다. 앞서 2004년부터 2012년까지 성구매 남성과 업소 건물주가 제기한 7건의 헌법소원은 모두 각하·기각했다.

헌재의 합헌 결정에 여성가족부는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여가부 관계자는 “헌재의 결정은 인간의 성은 금전적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우리 사회의 가치를 공고히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합헌 의견을 지지해 온 여성인권진흥원과 한국여성변호사회도 환영 입장을 밝혔다.

온라인에선 “합헌 이유가 모호하다”는 등 비판적 의견이 적지 않았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헌재가 합헌 근거로 든 건전한 성풍속·성도덕 등은 너무나 추상적인 개념”이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헌재의 간통죄 위헌 결정과 연관 지어 “성매매는 처벌하고 간통은 처벌 안 하니 성매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없는 ‘연애 스토리’라도 만들라는 것이냐”는 냉소적인 댓글도 있었다.

황수연·이유정·윤정민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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