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폐유리로 만든 구슬’ 수놓은 웨딩드레스 눈부시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6면

재활용 패션 선보인 H&M

재활용 소재를 패션에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 즉 선(善)이다. 문제는 재활용 패션이 꼭 아름답지 않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친환경·지속가능한 패션은 양식 있는 의류업체나 소비자가 환경과 사회를 위해 마
땅히 해야할 일을 하는 정도였다.
패션 본래의 매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최근 이같은 경향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 재활용 패션이지만 결코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 컬렉션을 선보이는 패션 브랜드들이 나오고 있다. 선(善)과 미(美)의 공존이다. 대표 주자가 지속가능한 패션의 선두에 선 글로벌 패션 브랜드 H&M이다.
H&M은 2012년부터 해마다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을 통해 재활용 및 친환경 소재와 아이디어를 활용한, 세련된 의류와 액세서리를 선보이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올해의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을 공개하는 자리에 다녀왔다.

기사 이미지

1. 의류의 생명 주기를 연장하는?자원 순환 시스템?를 설명하는 그림
2. 농약이나 비료 없이 재배한 유기농 대마로 만든 롱 드레스. 대마와 함께 전시했다.
3. 페트병에서 뽑은 재생 폴리에스테르 등으로 만든 쇼퍼 백
4. 유기농 면과 일반 면의 혼방으로 만든 블라우스. 아래는 목화꽃
5. 특수 프린트 기법을 사용한 이브닝 드레스. 유기농 면과 실크 등 지속가능한 소재로 만들었다.
6. 웨딩드레스도 지속가능한 소재로 만들었다. 유기농 리넨과 실크, 자카드 직물을 섞어 사용했다.

지난 16일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 있는 루브르 장식미술관에서 H&M이 ‘2016년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컬렉션(Conscious Exclusive Collection)’을 공개했다. 5년째 이 컬렉션을 전개하고 있는 H&M은 올해는 미술관과 협업해 소장품에서 영감을 얻은 의류와 액세서리 35점을 선보였다.

H&M 디자인팀은 지난해 5월부터 미술관 소장품 아카이브를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가깝게는 19세기 프랑스 화가 귀스타브 모로부터 300년 전의 의복 스타일까지 들여다봤다. 약 1년 전부터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은 여느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컬렉션을 설계하는 방법과 같다. H&M의 디자인을 책임지고 있는 앤 소피 요한슨 크리에이티브 어드바이저는 “재활용 소재를 사용한다고 패션이 뒷전이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 때문”이라며 “지속가능한 소재에 고풍스러운 매력과 현대적인 면모를 정교하고 우아하게 표현했다”고 말했다. 올해의 H&M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은 이 미술관에서 열릴 ‘앞으로의 패션-300년 간의 패션 회고’ 전시회의 오프닝(4월 7일)에 맞춰 세계 주요 매장에서 출시된다.

고전 명작을 수놓다

기사 이미지

귀스타브 모로의 작품에서 발췌한 프린트를 얹은 드레스. 유기농 실크를 사용했다.

H&M 디자이너들은 미술관 소장 패션 아카이브를 자세히 분석해 지난 300년간의 오트 쿠튀르(고급 맞춤복) 역사를 대변하는 주요 아이템을 선정했다. 미술관 측이 여러 세기 동안 보관해 온 옷감, 의류 및 그것에 영감을 준 재단법 등 세세한 자료들에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순수 미술과 재활용 소재, 패션이 어우러지는 컬렉션을 만들어냈다. 이탈리아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작품 ‘라 프리마베라(La Primavera)’의 한 부분은 깊게 파인 브이 네크라인의 유기농 실크 드레스 위에 앉혀졌다. 물이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실루엣과 얇게 비치는 소재를 사용한 덕분에 드레스 속 그림은 더욱 생생하게 보였다.

귀스타브 모로의 작품은 드레스, 반바지, 셔츠 등 여러 벌로 옮겨졌다. 작품 ‘주피터와 세멜레(Jupiter and Semele)’에서 발췌한 프린트를 유기농 실크 소재의 드레스에 녹여내기도 했고,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오마주 프린트로 미니 드레스와 반바지를 만들기도 했다. 독특한 프린트 기법인 ‘트롱프뢰유’를 사용해 대리석을 휘감는 듯한 착시를 보여주는 이브닝 드레스는 꽃송이들을 늘어뜨린 패치와 플라워 모티브로 한 자수 장식이 인상적이었다. 캐드린 더쉬 디자이너는 “지속가능한 컬렉션을 만드는 것은 여느 디자인 과정과 다르지 않지만 소재 연구개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때로는 마땅한 재료를 못 찾아 한계에 부딪히지만 이를 뛰어넘는 도전이 흥미롭다”고 말했다.

재활용 소재로 만든 웨딩드레스

패스트 패션 브랜드로 알려진 H&M이 웨딩드레스를 출시하는 것은 일종의 ‘사건’이다. 이번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의 하이라이트는 지속가능한 소재로 제작한 웨딩 드레스 세 종류다. 요한슨 크리에이티브 어드바이저는 “친환경적인 소재로 만든 웨딩드레스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고객의 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기농 리넨과 멀베리 실크를 주요 소재로 사용했고, 재활용된 유리 구슬을 비즈 자수 장식으로 사용했다. 유기농 실크는 농민뿐 아니라 환경을 고려한 소재다. 농약이나 살충제, 화학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유전자 변형을 하지 않은 뽕나무의 누에에서 얻은 실크를 말한다. 유기농 리넨도 화학 농약이나 비료 없이 재배된 아마 식물만을 사용한다. 네크라인이 깊게 파인 스타일과 목까지 올라오는 긴소매 레이스 드레스, 비즈가 많이 달린 장식적인 드레스가 있다. 가격대는 약 30만~60만원으로 책정됐다.

데님 폐기물로 만든 인조석 귀걸이

기사 이미지

지속가능한 패션은 혁신적인 소재를 개발하는데서 시작한다. H&M은 재활용 재료에서 새로운 섬유나 장식을 개발하는 데 꾸준히 노력해 왔다. 이번에 새로 소개한 혁신 소재는 ‘데니마이트’와 ‘재활용 유리 구슬’이다. 데니마이트는 데님을 생산하는 공장의 폐기물과 헌 청바지를 재활용해 생산한다. 청바지 천에 합성수지를 섞고 이 혼합물에 열을 가한 뒤 평평한 데서 압착해 굳히면 대리석처럼 딱딱한 소재가 만들어진다.

이번 컬렉션에서는 데니마이트로 귀걸이 여러 종류를 만들었다. 데니마이트를 패션에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터키석을 닮은 푸른 색깔에 무게는 가벼워 액세서리에 제격이다. 헨릭 람파 지속가능 개발 매니저는 “헌 데님의 색깔에 따라 다른 색의 데니마이트가 나오기 때문에 분홍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으로 변주할 수 있어 활용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유리 폐기물로 만든 비즈는 실크 스커트와 웨딩드레스 등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재활용 소재로 패션 상품을 만들 때 아직까지 가장 큰 난관은 장식이다. 요한슨 크리에이티브 어드바이저는 “진주나 비즈 장식 같이 의상을 화려하게 꾸미는 데 들어가는 자재를 재활용 소재로 만드는 데는 아직 한계가 있는데, 이번에 선보인 유리 폐기물로 만든 비즈는 큰 진전을 이룬 것”이라고 말했다.

페트병에서 뽑은 재생 폴리에스테르 실로 만든 재킷과 가방도 선보였다. 람파 매니저는 “H&M은 재생 폴리에스테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브랜드이며 매년 재생 폴리에스테르 사용량을 늘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9000만 병의 페트병을 재활용했다.

패스트패션과 지속가능성

친환경 의류 제조에 대한 H&M의 노력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기농 면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현재는 이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의류 브랜드다. 지속가능성이란 화두는 패션업계에는 숙제 같은 것이다. 천연 소재든 화학 섬유든 의류 제조는 필연적으로 자원을 대량으로 사용하고 환경과 생태계에 부담을 주기 때문이다. 비교적 싼 가격에 최신 유행을 반영한 의류를 발 빠르게 선보이는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경우 그 책임감은 더할 것이다. 매장에는 늘 신상품이 있고, 가격마저 싸기 때문에 소비 풍조를 과도하게 조장한다는 부정적인 인식도 있다. H&M이 지속가능한 패션에서 선두주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나 게다 H&M 지속가능성 부문 책임자는 “지속가능성은 우리의 성장 동력 중 하나이기 때문에 친환경적 소재 개발에 막대한 자원과 노력을 쏟고 있다”면서 “환경을 생각하면서도 아름다운 패션을 누구나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컨셔스 익스클루시브 컬렉션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파리=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H&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