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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작가로 추상미술 개척자|중앙캘러리 25일부터 10주기 회고전|우향 박래현의 생애와 예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우향 박래현회고전이 그의 10주기를 맞아 25일부터 3월24일까지 중앙갤러리에서 열린다.
우향은 한국미술사에 여러가지 진기록을 남긴 작가다.
1956년 제 5회 국전에서 『노점』으로, 제8회 대한미협전에서『이른아침』으로 한해에 2개의 대통령상을 따냈다.
동경여미전재학중(3학년)이던 43년 22회 선전에 하숙집 딸을 모델로 그린『장』을 출품, 대학생의 몸으로 최고상(총독상)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47년에는 동화백화점 (현신세계.미술관)에서 한국에선 처음으로 운보 김기창화백과 함께 부부전을 열어 1972년 미국펜실베이니아주 아렌타운미술관 초청부부전까지 15번의 전시회를 갖는 최장기록을 세웠다.
동양화가로는 맨처음 추상미술운동을 벌인 개척자.
6l년 10회 국전부터 초대작가가되어 여류화가로는 처음으로 심사위원이 되었다.
우향은 1920년4월13일 평남진남포시비석리에서 출생, 5세때(1925년)부모를 따라 전북군산시 귀암동으로 이주했다.
본명은 박내현·운보가 예운이좋게 결혼후에 올래(내)자에 뫼산(산)자를 붙여 산이름래(내)자로 바꾸었다.
우향이란 아호도 운보가 자신의 호 운과 대칭을 이루는 우자를 넣어 지었다.
우향이 운보를 처음 만난것은 43년5월 선전시상식에 왔다가 당시 화명을 날리고 있는 운보를 집(서울운니동)으로 찾아가 만난것.
우향이 노대가로 알았던 운보는 당시 29세의 건장한 청년이었다.
이렇게 만난 이들은 3년간의 교제끝에 46년1월27일 남산박물관에서 구식결혼을 올렸다.
운보와 우향의 결합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동경유학까지 한신여성이고 부잣집 맏딸인 우향이 청각을 잃은 가난뱅이 화가 운보와 결혼할줄은 아무도 예상할수 없었다.
주위에선 이들의 결합을 맹렬히 반대했고, 특히 우향어머니는 결혼식장에도 오지않을 정도로 완강했다.
하지만 우향은 도미까지 포기하고 검은돌로 만든 반지 한개를 신표로 서로의 예술을 간섭하지 않기로」약속하고 운보를 택했다.
결혼후에는 운보에게 필담대신 구화법까지 가르친 맹렬여성.
이같은 내조의 공은 그로하여금 74년 제6회 신사임당상을 받는 영광을 얻게 해주었다.
우향은 50년 피난지 군산에서 4년동안 실험제작에 박차를 가해 입체적 표현으로 탈바꿈했다.
사실적 표현을 떠나 형태와구성을 중심으로 한 작풍으로바꾸어 나갔다.
시각적인 것보다는 생각하는 즐거움을 갖게 하는 사유의 세계를 표출해 냈다.
우향의 작업은 1차적인 형태와 2차적인 색채의 융합으로 이루어졌다.
우향은 59년부터 추상적인 작풍으로 옮겨갔다. 새로운 구성에 새로운 색조를 곁들여 동양화라는 것보다는 회화로서 동양인의 체취를 간직한 작품을 빚어냈다.
우향은 69년 50세의 나이로미국유학길을 떠나 처녀시절에 못이룬 한을 풀었다. 뉴욕의 프래트 그래픽센터와 봅 불렉번 판화연구소에서 만학으로 7년간의 판화공부를 했다.
몸을 돌보지않은 새벽부터 받늦게까지의 공부가 건강을 해쳐76년1월2일 5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이규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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