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신문들 새 화장하고 독자앞에 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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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정치적 이념과 주장을 앞세우고 비판과 논평에 무게를 두어왔던 프랑스의 활자미디어들이 현실문제들을 밀도있게 부각시킬수 있는 사실보도와 시각적 호소에 역점용 두는 새로운 편집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적자투성이의 권위지 르몽드다.
이신문의 새사령탑이 된 「앙드레·퐁텐」사장은 최근 그동안의 신문제작방식에서 벗어나 사진과 도표들을 많이 담고 젊은 세대가 관심을 보이는 뉴스에 눈을 돌려 그들의 욕구용 충족시킬수 있는 새로운 신문으로 탈바꿈하겠다고 밝혔다.
「퐁텐」사장의 이같은 선언은 그에게 자리를 물려준 「앙드레·로랑스」전사장의 말과 맥을 잇는「로랑스」전사장은 르몽드의 경영난타개책을 마련하면서 다음과같이 말했었다.
『이제 신문의 시각적 이미지는 정치적 자세만큼 중요해졌다. 시각적 이미지가 씌어진 글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60년대의 프랑스청년들은 문학과 심리학·인류학을 공부했으며 사상과 혁명에 감동했다. 우리 신문은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성공해 르몽드는 60년대「좌파학생들의 바이블」이라고까지 했다.
그러나 이제 경제위기로 상처받은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은 더이상 사상에 관심을 갖지않고 있다. 학생들은 정치에 무관심해진 반면 경제와 경영학에 흥미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경제적「현실」용 원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방식이 가장 훌륭한 오직 하나의 저널리즘이라고 믿어왔으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창간후 41년동안 사진을 쓰지 않는 드문 신문으로 이법적 주장에만 치중, 전통적으로「문우엘리트」가 주도해온 프랑스사회를 대변해왔다고 자부하는 르몽드의 변신노력은 프랑스사회와 언론의 혁명이라고 할만한 큰 변화다.
그러나 TV문화의 광역화가 가져온 사회·문화의 급격한 변모를 생각하면 르몽드의 이런 방향전환은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많다.
프랑스의 활자매체 가운데 그동안 큰 성공용 거두고 여전히 괄목함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일간 리베라시옹지나 시사주간 르프왱지를 볼 때 그런 감이 더욱 짙다. 이들은 이미 오래전에 「새로운 시대」에 눈을 돌렸었다.
「사르트르」등 일단의 좌파지시 엘리트들이 72년 리베라시옹지를 창간했을 때만해도 이신문은 급진 좌파의「 유머없는 목소리」「난외신문」이라고 불릴만큼 이념과 주장만을 추구해 70년대 내내발행부수 4만부를 넘지 못했다.
기자들의 월급마저 거를 정도로 경영이 어려웠던 리베라시옹지가 발행부수 20만부에 육박하는 성장주로 뛰어오른 것은 80년대에 들어와 「일간잡지」스타일로 신문을 편집하면서 부터다.
이신문은 구태의연한 편집진을 대폭 수술하고 큰제목과 사진을 과감하게 등장시키는 한편 프랑스신문들의 전형적인 편집방식이던 뉴스와 논평·해설의 혼합에서 이를 따로 분리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날 그날의 편집회의를 모든 직원에게 공개하고 지금까지 프랑스신문들이 일종의 의미깊은 예술형식으로 춰급해왔던 광고디자인을 정형을 무시한 미국식 스타일로바꾸는등 뉴스의 재빠른 시각적 분석을 선호하는 독자들의 .욕망을 채워주려고 노력했던 자세도 이 신문의 발돋움에 크게 공헌했다. 특히 리베라시옹지는 다른 신문들이 기피하는 속어나 비어를 적절히 구사해 젊은층 독자들에게 더욱 다가섰다.
이 신문과 같은 해에 창간된 르프왱지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승기를 잡았다. 출발초기의 이념적 뿌리를 미련없이 갈라버린 이 잡지는사회적으로 관심을 끌수 있는 뉴스의 심층취재 보도등 막후이야기의 발굴에서 잡지의 특성을 살려 이미지가 살아있는 잡지로 변신, 현재 발행부수 꼬만부를 자랑하는 대잡지로 자리를 굳혔다.
가능한 한의 안벽과 비판, 중림을 잡지편집의 기조로 삼고 논쟁보다는 사실보도에 보다큰 비중을 두고 있는 르프왱은 『잘 만들어진 잡지는 TV시청자를 얼마든지 뺏어올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기존의 틀을 무시하고 젊은 세대를 중점적으로 겨냥해 성공한 활자 매체가운데 같은시기에 등장한 월간지 악튀엘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이 잡지도 당초 급진좌파의 이념분자들에 의해 창간됐으나 80년대에 들어와 『프랑스의 젊은 세대가 바라고 있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문화』라는 아이디어로 재출발, 신선한 음악과 같은 즐거움을 전달하는 잡지로 모습을 바꾸었다^.
대부분의 기성세대들이 80년대를 비관적인 눈으로 보고있던 당시, 이잡지는 80년대가 「낙관적인 테크놀러지의시대」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움직이는 세대, 새로운 아이디어의 세계인 「젊은 세대」에 파고들어 오늘날 발행부수 30만부를 넘는 최고인기잡지가 됐다.
판가름은 너무나 확연하다. 금세기초까지 파리에서 발행되던 신문만도 80여개지에 달했던것이 지금은 9개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이 이에 대한 대답이다.
프랑스의 신문·잡지들이 주장보다는 보다 풍부한 정보를 요구하고 있는 독자들의 성향에 맞추어 현대적 감각과 문화의 흐름에 동참하려 노력하면서 정보의 민주학와 언어의 재구성등 리듬있는 편집을 시도하기 시작한 것은 어쩔수 없는 시대의 요청이다.
이같은 변신에서 뒤지는 신문·잡지가 살아남기 어려운 것 또한 이시대의 논리이다. 『르 몽드가 베스트 셀러 신문이었을 때「미테랑」대통령의 사회당정부가 등장하고 르몽드가 도산 직전에 놓인 요즘「미테랑」대통령의 인기가 주체못할 만큼 떨어지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프랑스 언론계에서 나도는 이런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파리=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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