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사람과 감정 공유한 수담, 모처럼 즐겁게 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기사 이미지

30일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17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8강전에서 김지석 9단을 물리친 이세돌 9단이 밝게 웃고 있다. 172수 만에 불계승을 거둔 이 9단은 이번 승리로 맥심배 4강에 진출했다. [사진 한국기원]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대결 이후 훨씬 강력해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30일 서울 마장로 한국기원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17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8강전에서 이세돌 9단이 김지석 9단을 상대로 172수 만에 백 불계승했다. 이날 승리로 이 9단은 박영훈·강동윤·원성진 9단과 함께 제17기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4강에 진출했다.

맥심배서 김지석 잡고 4강 올라
알파고 대국 후 7? 빠졌는데
가족과 며칠 지내니 바로 회복

이세돌 9단을 대국이 열리기 전 한국기원 근처 카페에서 만났다. 이 9단은 편안한 표정으로 근황을 밝혔다. “알파고와의 대결 이후 체력이 많이 떨어졌지만 며칠 쉬고 나니 괜찮아졌다. 대결이 끝난 직후 7㎏ 정도 빠졌지만 지금은 다시 5~6㎏ 정도 쪘다. 바로 회복하더라”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대국 후 2주간의 생활에 대해서는 “제주도에 다녀온 뒤 서울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원래는 딸 혜림이와 부인이 24일 바로 캐나다에 갈 예정이었는데, 더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다음달로 출국을 미루고 서울에 같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밖에 나가면 주변에서 많이 알아보지 않느냐고 묻자 “대국 직후에는 알아보는 분이 많아서 가족이 불편해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2주 정도 지나고 나니까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았다. 괜찮다”고 했다.

알파고에 대한 언급도 했다. 이 9단은 신중한 태도로 “사람의 일이라 장담하기 어렵지만, 알파고와 다시 대결을 하면 2승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다”며 “물론 2주 전의 알파고를 기준으로 한 것이라 가정법일 뿐이다. 알파고의 시간과 사람의 시간은 다르기 때문에 한두 달만 지나도 알파고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력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김지석

이날 대국이 끝난 뒤 이 9단은 김지석 9단과 15분 정도 복기를 했다. 알파고와 대결할 때와 달리 상대 대국자와 수의 의도를 물으며 대화를 나누는 이 9단의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복기가 끝난 뒤 이 9단은 “심리적 동요가 없는 알파고와 달리 사람의 바둑은 ‘수담(手談)’이라고 하듯 서로 돌을 놓으며 감정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이 있다. 그런 면에서 오늘 힘들지만 모처럼 즐겁게 바둑을 뒀다”고 말했다.

알파고와 대결 이후 바둑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알파고와의 대국도 바둑이고 오늘의 대국도 바둑이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하기 어렵다. 하지만 알파고와의 대결을 통해 우리가 그간 감각에 의존해서 두던 수들을 조금 더 정확하게 수읽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이어 “알파고와의 대결 이후 바둑에 집중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 오늘 대국은 승부의 결과보다 바둑의 내용이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만족스럽다”고 덧붙였다.

다음 목표로는 다음달 18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리는 제8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를 꼽았다. 4년마다 열리는 응씨배는 최고 권위의 세계대회로 ‘바둑 올림픽’으로 불린다. 우승상금도 40만 달러(약 4억8000만원)로 세계대회 개인전 중 가장 많다. 통산 18번 세계대회 타이틀을 차지한 이 9단이지만 아직 응씨배는 우승하지 못했다. 이 9단은 “다음달 응씨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