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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바지에 이른 소 권력암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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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병상에 누워있는「체르넨코」공산당 서기장의 후계를 둘러싼 크렘린 내 권력투쟁은 두터운 베일에 가려진 채 막바지 단계로 접어 들었다.
악성 폐기종을 앓고 있는「체르넨코」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고 적어도 그가 다시 정상집무 하기란 글렀다는 여러가지 조짐들이 나타나는 것과 비례해서 권력투쟁의 연기는 더 솟아오르고 있다.
작년 12월27일 이후 일체 모습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체르넨코」는 최근 두번(2월2일과 11일)이나 심장마비 증세를 일으켰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크렘린 내 권력투쟁은 14개월(82년11월∼84년2월) 집권한「안드로포프」가 후계자로 키운 「고르바초프」를 제치고 늙고(당시 72세) 병든「체르넨코」를 서기장에 앉혔을 때부터 시작됐다.
「체르넨코」체제는 젊은 세대의 등장을 견제하기 위해 노장들이 과도기적 타협의 산물로 만들어 놓았던 것.
「체르넨코」이후의 대결은 대체로「브레즈네프」가 키운 구세대 지도층파「안드로포프」노선을 따르는 세력, 이것은 다시 노장파와 소장파 또는 대서방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뉘어 전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현재의 선두주자는 최연소 정치국원인 53세의「미하일·고르바초프」.
「고르바초프」는 80년 10월 정치국 정위원에 올랐고 작년 2월「체르넨코」가 당 서기장에 취임할 때 당서열 제2번의 위치를 확보했다.
「안드로포프」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았던 개혁파의 기수이며 좋은 학벌(모스크바 대법료 졸업)과 남다른 서방견문이 그의 장점으로 꼽히고있다.
그는 정치국원 중 드물게 캐나다와 영국을 공식방문, 서방외교 경험을 쌓은바 있으며 당내에선 경제정책(주로 농업분야)과 외교 및 이데올로기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정치국원보다 20세나 젊은 크렘린의「어린아이」라는 사실이 그의 개혁주의와 함께 70대 노장층으로부터 견제를 받는 사유가 되고있다.
정치국내 소장그룹이 전부「고르바초프」를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62세의「그리고리·로마노프」가 가장 강력한 라이벌.
「로마노프」는 12년 동안 소련 제2도시 레닌그라드지구당위원장을 역임, 레닌그라드에 강력한 발판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방위·군수산업담당으로 군부와 긴밀한 유대를 갖고 있다.
두 사람의 권력경쟁은 작년2월「안드로포프」사망직후 표출됐다.
지금까지 소련공산당서기장에 오른 사람은 정치국원에 당중앙위 위원을 겸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는데 그런 요건을 갖춘 사람은「체르넨코」를 빼고「고르바초프」와「로마노프」뿐이다.
이 둘 사이의 암투는 프라우다지나 모스크바TV 또는 소문을 통해 줄기차게 계속되어 왔다.
작년 10월중에는 당중앙위본회의에서 농업정책을 발표해야 할「고르바초프」가 불참한 것을 비롯, 한동안 소련TV와 신문에서「고르바초프」의 동정을 보도하지 않았었다.
반면 그 당시「로마노프」는 소련을 방문한 몽고지도자와 회담을 갖는가하면 프라우다지가 그의 움직임을 크게 보도, 모스크바 관측통들을 긴장시켰었다.
그 직전에는 「로마노프」와 가까운「오가르코프」소련군 참모총장겸 국방차관이 서부사령관으로 좌천(84년9월)돼 내부 권력투쟁의 엎치락 뒤치락을 보여주였다.
「고르바초프」는 그 후 11월7일 혁명기념일 행사 때, 그리고 12월 영국을 공식방문, 세계매스컴의 각광을 받음으로써 당내 제2인자의 위치를 재확인했다.
「고르바츠프」와「로마노프」의 경쟁에서 접전이 치열해질 경우 또는 노장층이 강력하게 젊은 세대를 견제할 경우는 제3의 인물로「빅토르·그리신」(70)을 등장시킬 가능성도 있다.
「그리신」은 61년 후보위원, 71년에 정위원이 된 정치국내 최고참으로 당내 노장세력의 지지를 받고있다.
컬러가 뚜렷하지 않아 타협적 대타로는 적격이나 그가 당중앙위비서국멤버를 겸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취약점이다.
이밖에 권력도전자로 꼽을 수 있는 인물은 KGB출신의「게이다르·앝리에프」(61)와 러시아공화국 수상을 겸하고 있는「비탈리·보로트니코프」(58) 정도다.
11명의 정치국원 중 6명이 70대로 노장그룹이 압도적이고 당중앙위멤버들 중에 「브레즈네프」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고르바초프」에겐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뒤진 경제를 일으키고 침체된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된다는 필요성, 그리고 경제력과 기술능력의 한계 때문에 군비경쟁보다는 미국과 협상을 해나갈 수 밖에 없다는 국내외 정치여건이「고르바초프」시대의 도래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런던=이제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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