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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터널·고속철·GTX…대통령급 공약 내건 의원 후보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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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도로니 지하철이니 깐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 보니 선거철이 맞긴 맞나 보네요.”

산업단지, 대기업 유치는 단골
“공약 중 몇 개나 지켜질지 의문”
19대 국회 공약 이행 51% 그쳐

경기도 화성시의 한 공원에서 선거용 현수막을 보던 이모(56)씨의 말이다. 그는 “공약만 보면 대통령이라도 뽑는 줄 알겠다”며 “저 대단한 공약 중 몇 개나 지킬지 의문”이라고 혀를 찼다.

20대 총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지역구 개발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도로 건설, 국책사업 유치, 국가산업단지 조성, 대기업 유치 공약 남발은 단골 메뉴다. 해당 지역에서는 환영받더라도 재원 확보나 입법 계획이 없는 사실상 한 줄짜리 구호에 불과한 공약도 많다.

예컨대 천안 지역의 후보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동서내륙철도를 끌어오겠다고 약속했다. 중부권 동서 내륙철도는 제1차 국가철도망계획에 포함됐지만, 제2차 국가철도망계획에 경제성(B/C)이 없다는 이유로 국토교통부에서 제외됐다. 그러나 후보들의 공약엔 사업성을 어떻게 높이겠다는 뚜렷한 대안을 찾기 어렵다.

목포에서 출사표를 던진 조상기 더민주 후보는 원도심을 국가 차원의 전통문화특구로 지정하고 목포항~용당 간 해저터널을 건설하겠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고속철도 관계자는 “기존에 논란이 됐던 목포~제주, 한·중 해저터널보다는 규모가 훨씬 작다고는 하지만 사업성과 실효성 측면에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전북 군산 지역의 장항선 복선전철화와 시속 250㎞급 신고속철 도입처럼 예비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인 사업이 새로운 사업처럼 공약에 포함된 경우도 있다.

수도권과 충청 지역에서도 서민 표심을 겨냥한 ‘대중교통’ 관련 공약이 쏟아지고 있다. GTX(수도권광역 급행철도) 또는 복선전철 건설을 약속하거나 이미 공사가 예정된 사업이 있으면 너도나도 ‘조기착공’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일단 질러놓고 보자는 식의 공약도 있다. ‘신공항 유치’가 대표적이다. 남부권 신공항을 두고 관련 지역 후보들은 서로 유치를 장담하고 있다. 남부권 신공항 입지는 오는 6월 공개되는 연구용역 보고서에 따라 결정하기로 관련 지방자치단체 간에 합의한 사안이다. 그러나 국회의원 후보자들이 지역민의 표심을 의식해 유치 경쟁에 나서면서 지역 갈등이 재점화할 우려도 나온다.

무책임한 지역개발 공약은 단지 지역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재정난에 시달리는 지방자치단체 중에는 이미 벌여놓은 지역개발사업을 중단한 곳이 적지 않다. 여기에 새로운 공약이 더해지면 중앙정부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따르면 지난 19대 국회의 공약 이행률은 51.2%였다.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을 배제한 채 무리한 공약을 내세우다 보니 공약 이행률이 떨어졌다는 분석이다. 이광재 매니페스토본부 사무총장은 “선거 과정에서 구호에 불과한 공약을 제시해 놓고 당선 이후 지역민 등쌀에 못 이겨 과잉입법이나 쪽지 예산 등으로 국가 자산과 행정력을 낭비시키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총장은 “후보들이 지역개발 정책을 내놓는 것은 좋지만 국가·지역 차원에서 타당하다는 것과 뚜렷한 입법계획을 입증하지 않는다면 거짓 약속을 하는 지역개발 로비스트가 될 뿐”이라고 덧붙였다. 공식적인 후보자의 선거공약서는 4월 2일 선관위에 제출돼 공개될 예정이다.

함승민 기자 s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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