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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뒤에는 금통위원 5명 우르르 교체할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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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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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현
경제부문 기자

“정부나 국회가 조치를 내놓을 걸로 생각합니다.”

지난달 말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에게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의 대거 교체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박 전 총재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며 관계 기관이 대책을 내놓지 않겠느냐고 했다. 아쉽게도 그의 기대는 어긋났다. 28일 차기 금통위원 후보자 4명이 결정됐다. 다음달 20일 임기(4년)가 끝나는 금통위원 4명은 모두 새 얼굴로 바뀐다. 금통위는 기준금리 조정과 같은 통화신용정책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금리를 낮추자면 7명의 위원 중 5명 이상이 출석해 그중 과반이 찬성해야 한다.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뺀 나머지 5명의 외부 출신 위원이 어떤 성향이냐에 따라 통화정책 방향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그런 금통위원을 한꺼번에 4명씩 교체하면 자연히 통화정책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흔들린다.

애초에 정부는 이를 피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했지만 2010년 이후 꼬였다. 이명박 정부가 그해 4월 박봉흠 전 위원의 자리에 친정부 인사를 앉히려다 여론이 악화하자 2년 동안 공석으로 뒀다. 그 바람에 2012년부터 위원 4명의 임기가 같아졌다. 4년 전에 이미 대거 교체가 예견된 셈이다. 이런 상태로 4년이 더 지나면 2020년에는 금통위원 7명 중 5명을 교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한은 부총재도 2020년이 교체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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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정치권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기는 했다. 금통위원의 임기를 분산하는 한은법 개정안이 지난해 8월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이후 깜깜무소식이다. 법안이 국회에서 방치된 사이 대거 교체는 현실화됐다. 익명을 원한 한은 관계자는 “19대 국회에서 개정안의 처리는 어려울 것 같다”며 “금통위원 임기 문제를 해결하자면 한두 자리를 공석으로 놔뒀다가 1~2년 후 선임하는 식의 비정상적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금통위원이 ‘경제통(通)’이라고는 하지만 신임 위원이 통화정책 결정자로서 업무를 파악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게 한은 안팎의 얘기다. 한 금통위원은 “밖에서 보는 것과 달리 업무를 파악하는 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며 “6개월 정도는 돼야 완전히 감을 잡는다”고 말했다. 자연히 ‘초보’ 위원들이 몰려 있는 새 금통위의 시행착오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만에 하나 금통위가 경제 상황을 잘못 읽어 그릇된 결정을 내리면 그 파장은 일파만파다. 한은 총재의 의견에 더욱 힘이 실려 이들이 당분간 ‘거수기’ 노릇을 할 수도 있다. 정부와 국회는 이제라도 안정적인 금통위 구성에 나서야 한다. 가뜩이나 나라 안팎에 위태로운 변수가 널렸다. 여기에 4년마다 ‘금통위 리스크’까지 한국 경제를 흔들도록 내버려둬선 안 된다.

하남현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