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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차 구지션의 꿈 “월 185만원 버는 록커면 좋겠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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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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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 콘서트’를 여는 뮤지션 김일두. 수 십 개 직장을 전전한 경험을 살린 공연이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구직하는 뮤지션을 줄여서 ‘구지션’이라고 했다. 부산에 사는 김일두(38)의 자기 소개다. 뮤지션으로 활동한 지 17년 만에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첫 토크 콘서트를 앞두고 있다. 이름하여 ‘구지션 김일두의 구직콘서트’다.

첫 토크 콘서트 여는 김일두
노래만으로 생계 꾸리기 힘들어

구지션은 노래만 하며 먹고 살기 어려운 현실이 담긴 표현이다. 인디 음악계에서 특히 그렇다. 생계를 위한 일은 대부분 따로 있다. 뮤지션의 감춰진 ‘민낯’이다. 김일두는 ‘구지션’이라는 자작 신조어로 민낯을 드러낸 셈이다. 25일 부산에서 기차 타고 올라온 그를 서울에서 만났다.

지난 연말 지인들과 이야기하다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음악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 일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더니 일자리를 만드는 공연을 하면 되겠다고 해서 기획했어요. 입담 좋으니 토크 콘서트로 하자고 해서요. 김일두의 구직을 위한 콘서트이자, 사람들과 함께 직업과 꿈을 생각해보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공연이기도 합니다.”

김일두는 스스로를 ‘구직의 거장, 실직의 유망주’라고 했다. 잘 취직하고 곧 그만둬서 그렇다. 고등학교 중퇴 이후 지금껏 다닌 직장이 30여 곳이 넘는다. 아르바이트는 빼고, 정식으로 면접 보고 취직한 곳만 헤아린 숫자다. 해산물 산지직송 회사, 밸브업체, 노점, 어상자 제작회사, 세탁소, 철강회사, 제과재료 납품회사, 당구장 등 영역의 제한이 없다. “복어 눈깔 파는 일도 했다”는 그는 지금 인테리어 업체에서 4개월짜리 리모델링 일을 하고 있다.

그가 한 길로 계속 파온 일은 딱 한 가지, 음악뿐이다. 스무 살에 첫 노래를 만들었고, 스물셋부터 쭉 음악을 하고 있다. 그는 현재 미국인 두 명과 함께 그룹 지니어스에서 펑크 음악을 만들고, 혼자서는 통기타로 포크송을 부른다.

2011년부터 자신의 솔로앨범을 거의 매년 내놓고 있다. ‘문제없어요’ ‘곱고 맑은 영혼’ ‘라이프 이즈 이지(Life is Easy)’ 등이다. 그는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노래를 만든다”고 했다. 자신이 만든 노래를 ‘나를 위한 유행가’라고 불렀다. 기타 음과 낮고 거친 그의 목소리가 어우러진 노래는 일상적이면서 꽤 뾰족하다. 영화로 따지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같다.

‘내가 봤어 세상에 진실이 없다는 것을 / 헌데 그게 내게도 없더란 얘기지 / 웃을까 말까 웃을 기분이 아니지만 웃었어 / 나름대로 멋적으려고….’(‘울었어’)

김일두는 “콘서트에서 ‘꿈을 지키자’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꿈을 묻자 “록커”라고 했고, “음악만 하면서 한 달에 185만원을 버는 록커면 더 좋겠다”고 덧붙였다. ‘세금 떼고 월 185만원’은 그가 자동차 협력업체를 다니면서 벌어본 가장 많은 돈이다.

저만을 위한 유행가를 포기하지 않고 만들었어요. 2013년쯤부터 노래로 돈도 벌기 시작했어요. 한 해 한 해 나아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직장을 다니고 그만두며 많이 좌절했는데 그조차도 쌓이니 특이한 이력이 됐습니다. 콘서트에서 제가 만났던 귀인(貴人)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악연조차도 귀인이 되더라구요.”

그의 구직콘서트는 다음달 4일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에서 열린다. 1544-1555.

글=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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