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위주 탈피…정당중심으로 투표|해방이후의 「유권자성향」 분석 정치학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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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선거철이 다가왔다.
정치학자들은 해방이후 한국인의 투표성향 변화를 어떻게 분석하고 있나.
윤천주 교수 (전 서울대총장)는『도시화는 민주화를 가져온다』고 지적했다 (『한국정치체계-정치상황과 정치참여』). 읍 이상의 도시화된 선거구에선 자신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한 정치적 판단에 따른 이해투표 (in-terest voting)가 나타나고 있어야 당후보의 당선율이 높았으나 비 도시화된 농촌지역에선 관의 압력을 따르는 준봉투표 (c-onformity voring)가 주류를 이루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준봉투표가 많은 경우『압도적 다수가 정치의 안정을 기한다』는 논리는 제대로 통할 수 없다고 보았다. 공포 또는 뇌물 같은 비합리적 자극에 의한 지지는 그것들이 중지될 때 지지 또한 쉽게 변질, 약화되기 때문이라는 것.
또 그는 역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제헌의회∼3대 민의원 선거 때까지는 인물중심적 투표가 압도적이었으나 58년 4대 민의원 선거 때부터 정당중심적 투표가 주류를 이루면서 양당제의 성격이 두드러졌다고 보았다.
안병만 교수(한국외국어대)는 54∼71년의 국회의원 선거를 분석하면서 58년과 71년의 선거를 여타의 「일반선거」와 달리 「중대선거」라 불렀다 (『한국행정학보』74년). 58년 선거에선 국민의 경제적 불안이 증가되는 가운데 사회유동화 현상이 신속히 확대되자 야당은 그 불만을 용이하게 조직화할 수 있었다.
71년 선거의 경우 경제발전 및 안정이 추구된 반면 사회의 유동화 현상 역시 더욱 신속히 진행됨으로써 국민의 정치관심도가 높아졌고 야당은 경제적 문제보다 정치적 「민주」의 쟁점을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국민의 정치적 불만을 체계화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종익 교수 (미 웨스턴 미시간대)는 71년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 후보가 유효투표의 51.2%를 얻은 반면 국회의원선거에선 공화당이 47·4%를 얻음으로써 한국의 유권자가 「점점 세련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지적했다 (『Part-y Politics and Electio-ns in Korea』).
최성일 교수(미 허버트 앤드 윌리엄 스미드 대) 또한 같은 책에서 유신체제의 선거법이 갖는 정치적 의미를 분석했다. 즉 선거구를 73개로 줄인 대신 1구 2인제를 채택하고 대통령이 전체의석의 3분의1인 73명을 지명한 제4공화국 국회의원선거법은 『여당의 도시대표성을 증가시키기 위해』고안된 일종의 게리맨더링이라는 것이다. 63년 선거이후 전국 5대도시에서의 여당 의석 수는 줄고 농촌의 지지에 크게 의존하게 되자 이는 여당의 정당성 자체를 의심받는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라고 보았다.
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시·읍·면 민의 투표형태를 조사한 길승흠 (서울대) 윤천주 교수는▲정치제도에 대한 냉소주의와 아울러▲제3공화국 이후 강력히 추진된 사회경제개발로 한국인의 정치의식수준이 현저하게 합리화 방향으로 이행되고 있음을 확인했다(『한국정치학회보』14집).
두 교수는 이러한 정치의식구조의 합리화가 시민과 정부의 중간에서 쿠션역할을 해주는 제 사회경제집단 및 정당조직의 활성화를 가져오지 않은 채 이루어진 점을 강조했다. 이들은 시민의 민주성은 크게 증가한 반면 정치의 안정성은 오히려 위축돼「안정된 민주정치」의 형성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종림 교수(미 아이오아 주립대)는 『지식인들이 정치적 반대의 잠재적 중요원천을 제공한다』고 지적했다(『Political Parti-cipation in Korea』).
그는▲도시화·교육수준·커뮤니케이션·경제성장의 지속적인 발전이 시민의 정치적 의식수준을 높여가면서 보다 활발하고 자율적인 정치적 역할을 요구하는 반면▲통치 엘리트는 거의 예외 없이 정치참여에 봉쇄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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