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 의상 재봉사 정봉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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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봉임여사(60)의 TV드라머 시청은 남다르다. 대화내용에 귀 기울이는 것도 아니고 탤런트의 얼굴표정이나 머리모양에 관심을 두지도 않는다. 그가 눈여겨 보는 것은 오직 하나, 옷매무새다.
이런 것을 두고 『직업은 못 속인다』고 한다던가.
정씨가 KBS의상실에서 자봉일을 맡아온지도 어언 9년. 4만5천원하던 월급이 35만원으로 뛰어 오르는 동안 관복·도포·당의·두루마기 등 한복에서 양복·일본옷·중국옷까지 그가 안만든 옷이 없을 정도가 됐다.
충북 영동이 고향인 그는 12세때 부친한복을 지어드렸을 정도로 바느질 솜씨가 뛰어났다. 17세때 일본으로 건너가 자봉학원에서 기술을 익히기도 했던 그는 해방후 2년간 쉰 것을 빼놓고는 지금까지 단 하루도 자봉틀 곁을 떠나본 적이 없다.
『배운 도둑질이 그뿐이라』며 6·25, 4·19 등으로 살림이 다 엎어질 때마다 자봉틀에 생계를 걸어오던 그는 『날이 갈수록 손님들의 비위맞추기가 힘들어』 가게를 걷워치우고 KBS의상실 계약직으로 드라머 의상과 인연을 맺었다.
고증을 거쳐 디자인이 완성돼 오면 마름질·바느질을 거쳐 다림질로 끝내는 것까지가 그의 임무. 항상 일감이 급하게 오기 때문에 『녹화시간을 대느라 밤을 새우는 것은 다반사』라면서도 『드라머가 새로 시작될 때는 언제나 홍역을 치러야한다』고 고개를 내젓는다.
옷이 울지 않고 편편하게 바느질 해내는 솜씨가 특기인 그는 그간 자신이 만든 옷가짓수가 몇백벌인지는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드라머만 보면 금세 자신이 만든 옷은 귀신같이(?) 구별해낸다.
『동정의 이가 잘 맞았나, 깃은 잘 달려있나 살펴보는 것이 TV시청』이라는 그는 『한복 입어본 경험이 적은 출연자가 옷고름을 잘못 매고 화면에 나오는 것을 볼 때가 가장 안타깝단다.
그는 『늦게둔 4남매의 학비조달 때문에 여직껏 5백만원짜리 셋방신세를 면치 못했지만 아이들이 바르게 자라 고맙기만 하다』면서 다시금 구한말 사령관의 막치기옷을 집어들고 자봉틀을 돌린다. <홍은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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