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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결국 지금, 여기의 휴머니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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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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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

어느 날 눈을 뜨고 나니 모두가 공상과학(SF) 같은 미래에 대해 앞다퉈 이야기하고 있었다. 글로벌 이벤트의 위력이다. 정부의 적극 지원 발표가 이어질 때마다 한동안 산업현장에는 눈먼 돈이 날아다닐 것이다. 엄마들의 소셜미디어네트워크(SNS)에 알파고가 언급되는 횟수만큼 새로운 학원 강좌가 개설되고 컴퓨터 관련 학과의 경쟁률은 치솟을 것이다. 인공지능 발전에 따라 지상에 유토피아가 실현되는지, 디스토피아가 기다리는지에 대한 예언도 풍성하다. 그런데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모두가 마치 미래를 과거·현재와 단절된 신기한 무엇으로 취급하고 있지 않나 하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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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인류는 같은 일을 반복해 왔다. 4차 산업혁명이 만들 미래가 궁금하면 1, 2차 산업혁명기의 역사를 먼저 볼 일이다. 분명 근대 과학기술 발전은 지금 인류가 누리는 번영을 낳았다. 그런데 이 주어와 술어 사이에는 많은 과정이 생략돼 있다. 영국의 1833년 공장법은 9세 미만 아동 고용 및 18세 미만 소년의 야간 노동을 금지했다. 공장주들은 시장경제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라고 강력 반발했다. 강철왕 카네기를 비롯한 19세기 기업가들이 예찬한 사상은 적자생존을 강조하는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이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아무 간섭 없이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하도록 둬야 사회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인류는 결국 대공황과 혁명, 세계대전으로 수천만 명 이상이 죽어간 후에야 생각을 조금 바꿨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해야 한다는 베버리지 보고서는 전쟁 중인 1942년에 나왔다. 국민을 게으름뱅이로 만드는 포퓰리즘의 기원이라는 비난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지만 말이다.

빅데이터를 이용한 인공지능 발전이란 인간들의 무수한 행동과 사고방식을 패턴화해 모방하는 데서 출발한다. 미래에 직업을 잃고 잉여인력으로 전락할 대부분의 사람들 삶이 궁금하면 지금 이 사회가 탑골공원에 앉아 있는 노인과 편의점 알바 청년들을 어떻게 대우하는지 보면 된다. 미래의 눈부신 과학 발전이 낳을 부가 어떤 방식으로 분배될지 궁금하면 지금 사회의 분배구조를 보면 된다. 더 먼 미래에 인공지능 또는 그와 결합한 신인류가 평범한 인간들을 어떻게 취급할지 궁금하면 지금 사회가 소수자들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보면 된다. 또는 동물들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미래는 이미 만들어지고 있다. 지금, 여기서 인간을 어떻게 대우하는지에 따라.

문유석 판사·『개인주의자 선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