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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페루…고통받는 이들 알리는 게 내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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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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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난민 열차 선반 위에 엎드린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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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민(流民)들을 기록하는 성남훈 사진작가.

지난 1월 세르비아 프레세보(presevo)에서 국경 시드(sid)로 향하는 기차 안. 소녀는 객실 선반 위에 엎드려 있었다. 세르비아는 시리아 난민들이 헝가리와 서유럽으로 향하는 관문. 난민 수송을 위해 특별 편성된 열차는 객실 바닥과 복도까지 인산인해였다. 같은 객실에 탄 다큐멘터리 사진가 성남훈(53)씨를 발견한 소녀가 시선을 살짝 카메라 쪽으로 돌렸다. 지친 모습이었지만 눈빛에는 어린아이다운 호기심도 담겨있었다.

?소외된 땅? 찍는 다큐 사진가 성남훈
10년 전 분쟁지역 사진집 펴내 호평
이번엔 환경파괴로 무너진 삶 담아
실상 널리 알리기 위해 온라인 펀딩

전쟁으로 집을 잃은 난민, 유럽 곳곳을 배회하는 집시, 무분별한 개발로 머물 곳이 사라진 아시아의 유민(流民)들…. 성 씨는 지난 26년간 세계 각지 분쟁 및 빈곤 지역에서 만난 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해왔다.

1998년엔 인도네시아의 민주화 시위 현장을 담은 사진으로 ‘월드프레스포토(World Press Photo)상’을 수상했고, 코소보·에티오피아·아프카니스탄·이라크 등에서 찍은 사진으로 2006년 『유민의 땅1』을 출간해 호평을 받았다. 그런 그가 지난 10년간 아시아와 남아메리카, 아프리카를 돌며 찍은 사진 200여 장을 엮은 『유민의 땅2』 발간을 준비하며 온라인 펀딩을 진행 중이다. 성 씨가 사진과 에세이를 ‘다음 스토리펀딩’에 올리면 네티즌들이 성금을 후원하는 방식이다.

성 씨가 카메라에 유민들을 담기 시작한 건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91년 무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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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난민들이 걸어서 마케도니아-세르비아 국경을 지나고 있다. 세르비아 도시 프레세보(presevo)에서는 크로아티아로 가는 열차를 탈 수 있다. [사진 성남훈]

나도 같은 이방인이었기 때문일까요. 터전을 잃고 헤매는 이들의 눈빛이 마음을 움직였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소외되고 변두리로 내몰린 이들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라 생각했죠.”

 첫 권이 전쟁으로 부유하는 유민을 담았다면 두 번째 책에는 기후변화 혹은 자연파괴 등으로 떠돌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로 담긴다. 전 세계 주석 매장량의 60%가 묻힌 인도네시아 방카섬이 대표적. 방카섬은 국영기업에만 주어지던 주석채굴권이 98년 민간에도 허용되면서 무분별한 채취로 환경오염이 심각해진 경우다.

“주석이 돈이 된다는 게 알려지면서 농·어민들도 본업을 때려 치우고 떠돌기 시작했어요. 기업들이 주석을 걸러낸 흙탕물을 찾아 돌아다니며 남은 주석을 채취하는 거죠.” 해발 5000m에 있는 페루의 금광도 찾아갔다. “도시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마지막 희망을 찾아 금광으로 올라옵니다. 이미 남은 금도 별로 없고, 채굴과정에서 나오는 유독물질로 중금속 오염도 심각하지만 돌아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죠.”

온라인 펀딩의 목표금액은 500만원. 13일까지 400여 만원이 모였다. 사진집을 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지만 굳이 펀딩을 진행하는 이유는 “국제 문제에 보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졌으면 해서”다. “세계 곳곳에서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그것을 자꾸 환기시키는 게 제 사진의 역할이라 생각합니다.” 『유민의 땅2』는 올 가을 발간될 예정이다.

이영희·서준석 기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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