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소영의 컬처 스토리

로봇 기자와 노벨 문학상 타는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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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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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알파고의 충격에 밥벌이가 걱정된 나머지 영국 BBC 방송의 ‘로봇이 당신 직업을 대체할까요(www.bbc.com/news/technology-34066941)’ 사이트를 찾아갔다. 옥스퍼드대의 연구를 바탕으로 영국의 각 직종이 20년 안에 컴퓨터화될 확률을 보여준다. ‘기자, 신문 편집자’ 직종을 클릭하니 8%라고 뜬다. 어라? 의외로 낮다.

AP통신은 2014년부터 데이터 기반 알고리즘으로 기사를 대량 생산하는 ‘워드스미스’를 도입해 기업 분기 실적 기사를 쓰게 하고 있다. 사실 지금 한국 포털 뉴스섹션에 곧잘 보이는, 보도자료를 그대로 베낀 기사들과 실시간 검색어에 숟가락 얹으려 재탕·급조한 기사들, 이미 로봇이 쓰는 것 같은 그 기사들도 조만간 진짜 로봇이 더 잘, 훨씬 빠르게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 기자가 사라질 확률은 왜 90%가 아닐까.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도 인간 영역에서 사라질 직종 중 하나로 기자를 뽑았는데… 아, 현장 취재기자는 제외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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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는 발로 써야 한다”는 선배들의 고전적 훈계가 생생한 목소리로 다가오는 순간이다(‘발기사’와는 다름!). 발로 쓴 기사가 위대하게 확장 진화한 케이스가 지금 내 책상에 꽂혀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5년째를 맞아 다시 꺼내본 『체르노빌의 목소리』(사진). 노벨 문학상을 탄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 알렉시예비치의 작품이다. 저자는 “새로운 얼굴을 한” 재앙에 관해 10년에 걸쳐 100명이 넘는 사람을 인터뷰해 그들의 목소리를 책에 담았다. 방호복도 없이 원전 사고 현장에 투입된 남편이 죽어갈 때 그 곁을 지킨 대가로 건강과 배 속의 아이를 잃은 여인. 제2차 세계대전을 견뎌낸 경험이 자신을 지켜주리라 믿었으나 눈에 보이지 않고 이해하지 못할 재앙에 무력감을 느낀다는 학자 등등.

알렉시예비치의 책들은 이렇게 논픽션 저널리즘의 형식인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진정한 목소리를 끌어내고, 그것을 무심한 구어체의 탈을 쓴 의미심장한 시처럼 쓰고, 그들을 편집해 핵 재앙의 집합적 체험과 사유의 유기적 몽타주를 구축한 것에 대해 넓은 의미의 문학적 힘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것은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아까지 갖춘 최상위 인공지능이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미 현재가 된 ‘로봇 저널리즘’의 시대에 도태되지 않을 인간의 저널리즘은 무엇일까. 알렉시예비치는 그 답을 이야기해 준다. 문학과 학문의 경계가 허물어진 새로운 저널리즘에 대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