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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가지 진료비 계속되면 의료 한류 망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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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더 기자 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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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

국내 병원을 이용한 외국인 환자는 2009년 이후 1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이 쓴 진료비만 3조원이 넘는다고 한다. 정부가 ‘메디컬 코리아’를 내세워 2009년부터 외국인 환자 유치 사업을 벌여온 결과다. 창조경제의 핵심 모델로 삼고 홍보 활동도 적극적으로 해온 덕분이기도 하다. 의료 관광차 한국을 와본 외국인의 병원 만족도는 상당히 높게 나온다.

실제로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국내 병원을 이용한 적 있는 중국·베트남·아랍에미리트(UAE) 등의 외국인 환자 1214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이런 평가가 나왔다. 특히 중국인 환자는 5점 만점에 4.3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줬고, 베트남은 3.96점, UAE는 3.82점을 매겼다. 이들의 반응을 보면 ‘전문적이다’ ‘의료 수준이 높다’ ‘치료를 잘한다’는 호평도 분명히 있다.

그렇다면 외국인 환자 본인이나 환자 가족들은 다시 한국을 찾아올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한국 병원을 다시 찾겠느냐’는 질문엔 5명 중 1명이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중국 환자의 15.3%, 베트남은 16.4%, UAE는 34.9%가 “한국 병원을 다시 이용할 의향이 없다”고 응답했다. 세 나라 환자들이 공통으로 꼽은 걸림돌은 비싼 진료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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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서울 강남의 한 병원 관계자는 비싼 진료비 실태에 대해 “같은 시술이라도 외국인 환자 진료비는 천차만별”이라며 “대부분 바가지를 쓴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를 알선하는 브로커에게 진료비의 상당액을 수수료로 떼줘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병원 입장에서 비싼 수수료를 물면서도 브로커에게 의지하는 건 브로커 없이는 외국인 환자 유치 자체가 힘든 탓이라고 했다. 실제로 최근 수술비의 최고 90%를 수수료로 챙긴 브로커가 적발되기도 했다. 그의 고객이 된 한 중국인 여성은 시가의 27배가 넘는 2억원을 주고 가슴 확대 수술을 받았다. 바가지 진료비가 외국인의 재방문을 막고 있는 셈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월 “올해 외국인 환자를 40만 명 유치하고 2020년 100만 명까지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오는 6월엔 외국인 환자 유치지원법이 시행된다. 외국인 성형환자에게 한시적으로 부가가치세를 환급해주기로 했고, 4개 국어로 진료과목별로 표준 진료비를 안내하는 웹사이트도 오픈했다. 하지만 불법 브로커가 활개치고, 병원이 외국인을 상대로 바가지 진료비를 부과하는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면 ‘의료 한류’는 몇 년 내에 끝날지 모른다. 이제는 몇 명이 한국을 찾아왔는지 양적인 실적에 만족하기보다 혼탁해진 시장 질서부터 바로잡아야 할 때다.

이에스더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