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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아동학대, 공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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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일곱 살 신원영군이 숨진 뒤 암매장된 것으로 확인됐다. 무사하기를 바랐던 시민들의 기도는 끝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번에도 가정 내 학대에 따른 죽음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이젠 분노를 지나 허탈감마저 주고 있다.

원영군 시신은 그제 경기도 평택의 한 야산에서 수습됐다.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굶주림과 다발성 피하 출혈, 저체온 등이었다. 구속된 계모 김모(38)씨는 지난해 11월 아이를 욕실에 감금한 뒤 아이가 숨진 지난달 2일까지 하루 한 끼 정도만 먹이며 수시로 폭행해왔다고 한다. 온몸에 살균제인 락스를 부은 데 이어 숨지기 전날에는 옷을 모두 벗기고 샤워기로 찬물을 뿌린 것으로 조사됐다. 숨진 뒤에도 김씨와 친부 신모(38)씨는 아이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구입하는가 하면 차량 블랙박스에 아이를 걱정하는 대화가 녹음되도록 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은폐하려 했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이러한 비인간적 학대가 3년간 방치돼 왔다는 사실이다. 지역 아동센터에서 아이들 몸에서 회초리 자국을 발견하는 등 학대를 눈치챘지만 “간섭하지 말라”는 부모 말에 막혀 구호 조치를 하지 못했다. 당시는 학대가 의심될 경우 경찰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조사·격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아동학대특례법이 시행되기 전이었다. 결국 공권력이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개입할 수 없도록 한 제도와 문화가 한 아이의 죽음이란 결과를 낳은 것이다. 지금도 아동보호전문기관·보호시설 인력과 예산 지원이 부족해 전문적인 상담·치료는 어려운 형편이라고 한다.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건 지역의 네트워크다. 주민센터 공무원이나 교사 등이 의무교육 미취학자나 장기 무단결석 아동의 가정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확인토록 하는 ‘아동학대 조기 발견체계 구축’ 계획이 하루빨리 제대로 시행돼야 한다. 집안에만 갇혀 있는 아이를 찾아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웃 주민들도 학대 정황을 알게 되면 지체 없이 신고해야 한다. 이런 모두의 노력이 없다면 원영군의 비극은 계속해서 재발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