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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피곤한 마르크스, 잠든 공자를 깨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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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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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와 공자의 화해
권기영 지음
푸른숲, 312쪽, 2만원

사회주의로는 사회 통합에 한계
낙후된 중국 ‘원흉’ 지목되던 공자
민족주의 바람 타고 화려한 부활
체제 과시 위한 의도도 숨어있어

한(漢)이 세워진 뒤 청(淸)이 망할 때까지 2000여 년 넘게 중국을 지배한 건 공맹(孔孟)의 도(道)였다. 그런 유가(儒家)는 이제까지 두 차례 외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한 번은 불교에 의해서 그리고 다른 한 번은 마르크스주의에 의해서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고 있으니 공식적으로 중국은 아직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국가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많이 바뀌었다. 경제엔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접목했고 문화의 영역에선 전통의 부활이 한창이다.

책의 초점은 이 전통의 회복에 맞춰져 있다. 전통이 유가를 말하는 것은 물론이다. 그리고 유가의 중심에 공자가 서 있다. 『마르크스와 공자의 화해』란 책의 제목에서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를, 공자는 전통을 일컫는다.

원래 중국의 주인이던 공자는 언제 어떻게 그 자리를 마르크스에게 내줬다가 되찾고 있는 것일까. 중국 근대의 시작을 알린 1840년 아편전쟁 이래 중국에는 두 개의 ‘70년 역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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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오른쪽)’와 ‘마르크스’는 중국을 움직이는 문화 코드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이데올로기 공백을 메우기 위해 중국공산당은 공자를 부활시켰다. [중앙포토]

첫 70년은 청이 무너지던 1910년대까지다. 중국의 과제는 부국강병이었다. 그리고 중국이 택한 길은 ‘유학을 신념으로 하되 서양의 기술을 이용하자’는 중체서용(中體西用)의 입장이었다. 당시만 해도 공자의 위치는 굳건했다. 캉유웨이(康有爲)가 공자 사상을 종교적으로 개조해 현대 사회에 맞는 국교로 삼고자 공교회(孔敎會)를 설립했을 정도다.

그러나 1917년 시작된 신문화운동 이후의 두 번째 70년은 공자에겐 암흑의 세월이었다. 중국의 지식인들이 서구의 발전 동력은 ‘민주’와 ‘과학’에 있으며 중국이 낙후된 원인은 유교를 핵심으로 하는 ‘전통’에 있다고 보면서다.

우위(吳虞)는 유가의 효와 가부장제 옹호가 군주에게 무조건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전제정치의 기초가 됐다고 비판했으며 루쉰(魯迅)은 심지어 유가를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으로 묘사하며 ‘아이들을 구하라’고 외치기에 이르렀다.

지탄받는 공자를 대신한 이는 마르크스였다. 왜? 미국의 중국사학자 모리스 마이스너에 따르면 “마르크스주의자가 되는 것은 중국 지식인들이 전통과 제국주의 모두를 거부할 수 있는 길”이자 “중국을 변화시킬 정치 행동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사회주의 국가를 이룬 마오쩌둥(毛澤東) 시대에도 왜 공자는 계속 탄압을 받아야 했나. 문화대혁명의 주동자들이 이에 대한 해답을 전통 문화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자산계급은 타도됐지만 네 가지 옛 것(四舊, 구사상·구문화·구풍속·구습관)이 대중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본 것이다. 문혁 기간 공자 등 전통 문화가 철저하게 파괴된 배경이다.

그렇게 마르크스에게 짓밟히던 공자가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한 건 80년대 말 동구권이 붕괴되면서다. 마르크스의 사회주의로는 더 이상 중국인의 마음을 한 곳으로 모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사회주의를 대신한 이념적 정체성으로 민족주의가 떠올랐다.

89년 천안문(天安門) 사태 이후 중국에 대한 서방의 제재는 중국인의 애국심을 더욱 고취시켰다. 민족주의는 자연히 전통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고 이는 결국 공자를 소환하기에 이른 것이다.

유가 경전 학습 열풍에 이어 공자학원의 세계 진출이 시작됐다. 특히 2008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때 죽간을 든 공자의 3000 제자 행진은 공자의 부활을 세계에 고했다. 저자는 마르크스와 공자가 이제 화해를 했다고 봤다.

한데 아쉬움이 남는다. 중국이 과거를 소환해 자신의 위대함을 선전한 것까지는 알겠는데 인류의 미래를 위해 중국이 기여하려는 그 무엇의 실체는 아직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유상철 논설위원 you.sangchul@joongang.co.kr

[S BOX] ‘아바타’ ‘쿵푸팬더’ … 승승장구하는 중국 소재 문화 콘텐트

중국에서 문화는 사업이었다. 공산당 정책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이란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이제는 문화사업이 아닌 문화산업이라 말한다. 문화를 돈으로 인식한다는 이야기다. 미래를 이끌 핵심 산업으로 정보, 바이오, 서비스, 문화 등을 꼽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은 전통을 꺼내어 문화산업 발전의 동력으로 삼고 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건 미국의 애니메이션 영화 ‘쿵푸팬더’와 같은 사례다. 쿵푸는 중국 고유의 무술이고 팬더는 중국을 대표하는 동물이다. 영화 ‘아바타’ 또한 장자(莊子)의 철학을 깔고 있다. 미국은 전 세계 문화 유산을 마치 제 것인 양 사용해 큰 성공을 거두곤 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급격하게 팽창하는 중국 문화산업 시장을 노리며 우선적으로 중국의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콘텐트 개발에 열을 올린다. 우리도 중국의 전통문화를 꼭 중국만의 것으로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과감하게 중국의 전통문화에서 콘텐트를 추출해 중국 시장 공략에 나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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