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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러시아 반발 등 독자 대북제재 후유증 최소화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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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가 8일 금융 제재 및 해운 통제 확대를 골자로 한 독자적인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한 건 마땅한 일이다. 그간 미국·일본·유럽연합(EU)은 유엔 안보리 제재 외에 독자적 조치를 잇따라 단행했다. 북핵 문제 당사국이자 국제사회의 제재를 주도해야 할 우리가 그 이상의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핵 문제 당사국으로서 독자 제재 마땅
러시아 등 돌리지 않게 각별히 신경써야
3대 외교 정책 무산으로 새 로드맵 절실

이번에 발표된 4개 항의 제재 중에는 다분히 상징적인 조치도 있다. 핵 및 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개인 40명과 단체 30개를 새롭게 금융제재 대상자로 지정한 것부터 그렇다. 이들과 실제로 금융 거래를 맺어온 국내 인사나 금융기관이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해운 통제 및 수출입 규제 강화와 북한 식당 이용 금지 등은 얘기가 다르다. 제대로 이행하면 얼마 남지 않은 북한의 외화벌이를 제대로 차단할 수 있다.

4개 항의 제재 조치 중 3개는 나라의 몫이지만 우리 국민과 재외동포가 지켜야 할 내용도 있다. 북한 식당 등 김정은 정권의 해외 영리 시설 이용 자제가 바로 그렇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북한 식당에 슬쩍 들른들 알 수도, 처벌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런 행위가 우리를 향해 날아올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로 이어진다는 걸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이번 조치가 어쩔 수 없다 해도 당국은 이에 따른 후유증을 최소화해야 한다. 가장 큰 걱정은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여기에 공을 들여온 러시아가 크게 반발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협력사업은 러시아산 석탄을 하산-나진 간 철도로 운반한 뒤 남한에 배로 들여오는 것이었다. 유가 하락으로 고통 받는 러시아로서는 훌륭한 새 수입원이 틀림없다. 러시아가 이번 안보리 제재안 승인 때 나진항을 통한 제3국산 석탄 수출만은 예외로 만든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180일 이내에 북한에 들렀던 모든 선박의 국내 입항이 금지돼 프로젝트는 없던 일이 됐다.

냉전 때보다 한반도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이 줄어든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러시아는 여전히 6자회담 멤버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다. 이런 러시아의 협조 없이 평화 통일이 순탄하게 이뤄질 리 없다. 이유야 어떻든 이런 나라가 우리에게 등을 돌리지 않도록 다방면으로 신경 쓸 일이다.

이와 함께 잊지 말아야 할 건 나진·하산 프로젝트의 무산으로 박근혜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치명상을 입게 됐다는 것이다. 이로써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동북아 평화 협력 구상’에 이어 이번 정부의 3대 외교 정책이 모두 좌초되는 셈이다. 4차 북한 핵 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라는 예기치 않은 사태로 인해 외교의 기본 방향이 흔들린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치자. 하지만 그렇다고 먼 길을 인도해 줄 로드맵 한 장 없이 격랑이 몰아치는 동아시아 상황을 헤쳐나갈 수는 없다. 이제 한국 외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원점에서부터 고민할 처지에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