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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자락 휘어감은 국악 한마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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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주말인 지난 5일, 북한산 기슭에서 '하우스 콘서트'가 열린다기에 찾아간 경기도 고양시 지축동.

지하철 구파발역에서 북한산성 방면으로 5분쯤 달리다가 '북한산 온천'이란 팻말을 보고 좌회전해 좁은 시골길에 접어드니 '슬기둥 초청 북한산 음악회'라는 현수막이 방문객을 맞는다.

북한산의 서북사면에 해당하는 이곳은 서울 구기동.평창동.우이동 등 산기슭에 위치한 '문화동네'중 가장 최근에 형성된 곳이다.

영초봉.인수봉.백운대.만경대.의상봉이 한눈에 들어오는 데다 국립공원.그린벨트.군사보호지구에 3중으로 묶여 2층 이상의 건축물을 찾아 볼 수 없다.

이날 공연은 3년 전 이곳에 이사온 김한영(55.전 SBS TV 제작위원)씨 부부가 1백평 남짓한 자택 잔디밭 마당에서 마련한'집들이 음악회'다.

김씨와'MBC 마당놀이'를 함께 만들었던 연출가 손진책씨가 간이무대를 제공했고, 마을사람들이 힘을 보태 음식과 조명.음향 설비를 마련했다.

오후 6시 막걸리를 곁들인 저녁 식사가 시작됐고, 오후 7시30분 연극인 김종엽씨의 사회로 국악 실내악단'슬기둥'의 무료 공연이 펼쳐졌다. '고구려의 혼''소금장수'등이 이어지자 신명나는 국악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앙코르곡으로 '밀양 아리랑'을 연주할 때는 동네 아줌마들도 나와 어깨춤을 들썩이며 흥겨운 장면을 연출했다.

이날 잔디밭 마당에는 이인제 자민련 대표 대행, 유자효 SBS 기획실장, 강맑실 사계절 출판사 대표, 인기 탤런트 김수미.김영애, 연극인 전무송 등 유명인사들의 얼굴이 눈에 띄었다. 오효진 청원군수는 청원산 쌀을 싣고 왔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가수 옥희씨가 무대로 불려나와 즉석에서 '예스터데이''이웃 사촌'을 불렀고, 공연은 오후 9시가 넘어서 끝났다. 서울에서 온 관객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빠져 나가자 동네 사람들을 중심으로 밤새 야외 바비큐 파티가 벌어졌다.

지축동 예술인 마을에는 종로에서 찻집을 운영하는 서예가 김기상씨, 전위 행위예술가 무세중씨, 서양화가 남유소씨, 조각가 이숙진씨 등이 모여 산다. 금속공예가 이상구씨는 카퍼하우스라는 이름으로 금속공예품 판매를 겸한 카페를 열고 있다.

'소리길'이라는 살림집 겸 국악사랑방을 연 대금 연주자 김평부씨는 인근 서울 은평구.서대문구와 일산에서 찾아오는 수강생들에게 장고.북.대금 등을 가르치고 있다. 공기 좋고 경치 좋아 국악 배우기에 분위기 만점이다.

경치 좋고 사람 좋은 까닭에 주말이면 이곳을 찾는 단골 손님들도 많다. 연극인 손진책.김성녀씨 부부, 가수 장사익씨, 사물놀이 주자 이광수씨, 북연주자 김대환씨, 두드락 대표 최익환씨, 조각가 황창록씨 등….

안마당을 개방해 음악회를 꾸민 김씨는 "아내와 배드민턴을 치던 잔디밭도 훌륭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김씨와 함께 이번 공연을 기획한 이명준(전통민속문화연구소장)씨는 "사흘이 멀다하고 함께 모여 새벽까지 술을 마시기만 할 게 아니라 자연 풍광과 어우러지는 문화 마당을 꾸며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글.사진=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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