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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맹모삼억지교…초등학교 학군 때문에 집값이 평당 3억원으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베이징에 '평당 3억원'짜리 집이 등장했다.

봉황망(鳳凰網)을 비롯한 중국 언론에 따르면 최근 베이징 시청(西城)구 원창후통(文昌胡同·후통은 골목이란 뜻)의 11.4 ㎡ 단층집이 530만위안(약 9억8000만원)에 거래됐다. 1㎡당 46만위안(약8500만원)인 셈이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평당 가격(1평은 3.3㎡)으로 환산하면 2억8000만원을 훌쩍 넘는다.

집값이 이토록 비싼 이유는 딱 하나, 초등학교 학군 때문이다. 이 골목 끝자락에 있는 100년 전통의 명문 초등학교인 '베이징 제2실험 소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우선권이 주택 소유자의 자녀에게 주어진다. 이 학교를 졸업하면 인근의 베이징 사범대 부속중학교 등 입시 성적이 좋은 명문 중학교에 쉽게 진학할 수 있다.

호구(戶口)제가 시행되고 있는 중국에선 입학 학교를 결정할 때에도 호구를 근거로 한다. 주택 소유자에게는 해당 지역 호구가 부여되지만 실거주자인 세입자에겐 호구가 주어지지 않는다.

중국에선 이처럼 학군이 좋은 지역에 있는 주택을 '학구방(學區房)'이라 부른다. 취학연령의 자녀를 둔 부유층이 거액을 들여 학구방 매입에 나서다보니 명문교 주변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맹모삼천지교'가 아니라 "맹모삼억지교'란 말이 나올 판이다.

'도대체 평당 3억원짜리 집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 천안문 광장에서 서쪽 4㎞ 지점의 원창 후통을 찾아가봤다.

베이징의 심장을 관통하는 창안(長安)대로에서 한블록 떨어진 도심이지만, 수십년째 그대로인 낡은 재래식 가옥이 다닥다닥 밀집한 허름한 골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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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비쌀 법한 집이 눈에 띄지 않아 행인에게 물어보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지난해까지 1㎡당 30만위안이랬는데 얼마전 신문에 46만 위안에 거래됐다고 나오더군요. 기사에서도 어느 집이 팔린 건지 밝히지 않아 나도 모르지만, 여기 집값은 다 큰 차이 없어요. 보다시피 집들이 다 비슷하잖아요. 집보고 사는 게 아니라 학교보고 사는 거니까…."

이 곳의 주거 형태는 중국 전통식 서민주택인 대잡원(大雜院)이다. 골목을 향해 나 있는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시 그 안에 열가구 안팎이 모여사는 형태다. 대문마다 바로 옆 담벼락에 전기 계량기는 10여개가 붙어있다. 한 가구당 면적은 8~15㎡ 정도다. 개별 화장실이 없어 공용 화장실을 사용하는 등 주거 환경은 열악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한 집을 노크하고 문을 열어보니 60대로 보이는 여성이 나왔다. 그는 "여기 사는 사람은 다 세입자들이다. 돈많은 사람이 여기 살 리가 없잖은가"라고 말했다. 15년째 이 골목에 살고 있다는 남성은 "이 골목 가구수는 많지 않아 매물은 별로 없는데 학군 때문에 구매 희망자가 많으니 집값이 비싼 것"이라며 "하지만 임대료는 한 가구당 월세 1000위안(약18만원) 안팎이니 베이징에서도 싼 축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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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담벼락에는 '학구방 있습니다'란 문구와 함께 중개인의 전화번호를 적어 놓은 안내문이 빼곡이 붙어있었다. '학구방'을 찾는 수요가 적지 않다는 방증이었다. 한 중개인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부동산 경기와 상관없이 학구방은 해마다 집값이 오르는 추세"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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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이곳저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류(劉)씨 성의 20대 남성을 만났다. 그는 "하도 인터넷에 떠들썩하기에 직접 와 봤다"며 이렇게 말했다.

중국에는 1년 월급을 다 모아도 10만 위안(약 1850만원)이 안 되는 사람이 대다수입니다. 평생 월급을 모아도 쪼그려앉을까 말까한 넓이인 1㎡를 살 수 없다니…. 한국도 마찬가지인가요?"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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