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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인공지능은 신도 이길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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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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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인간이 만든 것 중 감히 신의 권능에 도전하는 두 가지 게임이 있다. 하나는 바둑, 하나는 주식투자다.

탐욕과 공포가 없는 로봇
되레 블랙스완이 될 수도

 바둑 9단은 입신(入神)이라 불린다. 신의 경지라니? 그럼 정말 9단쯤 되면 신의 뒷머리라도 잡아챌 수 있단 말인가. 기자들은 짓궂다. 30여 년 전 일본 바둑의 전설 고(故) 후지사와 히데유키(藤澤秀行)에게 물었다. “바둑의 신과 겨룬다면 어떨까.” 후지사와는 “두 점이면 승부할 만하다. 그러나 목숨을 건다면 석 점을 깔겠다”고 했다. 후지사와는 50대에 기성전을 6연패 했으며 사상 최고령인 66세에 타이틀을 획득하기도 했다. 우리에겐 조훈현 9단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아무리 그렇기로 신과 목숨 걸고 내기하는 데 석 점이라니, 아니 애초 신과 목숨을 건 승부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다니. 바둑의 세계에선 신이 그렇게 만만하단 말인가.

 이세돌과 며칠 뒤 맞서는 구글의 알파고는 곧 바둑의 신이 될 것이라고 한다. 머신 러닝(machine learning), 인간처럼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 때문이다. 스스로 학습하는 능력의 골자는 가지치기다. 인간은 버릴 줄 안다. 인공지능은 그걸 못해서 바둑 한 수에 2억 개씩 연산을 하고도 지금껏 인간에게 졌다. 알파고는 한 번에 10만 수만 검토한다. 나머지 필요 없는 수억 개의 수는 버리는 것이다. 인간은 기껏해야 한 번에 1000개의 수를 검토한다. 그러니 더 이상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게임’ 바둑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다른 수는 없나. 있다. 조훈현의 말대로 게임의 규칙을 바꾸면 된다. 가로세로 19줄을 17줄, 21줄, 23줄로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그래봤자 미봉책이다. 알파고의 발목을 잠시 잡아둘 수 있을 뿐이다. 기자들이 훗날 알파고에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까. “호선, 또는 신이 두 점을 깔아야 할 것”이라고 하지 않을까.

 다른 하나의 게임, 주식 투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역시 로보어드바이저(로봇+투자전문가)가 투자의 신이 될 것이라고 한다. 세계 자산관리시장엔 이미 로보어드바이저의 진격이 시작됐다. 미국에만 200개가 넘는다. 지난해 운용자산만 200억 달러, 5년 뒤엔 2조 달러로 늘어날 것이란 게 글로벌컨설팅업체 AT커니의 전망이다. 올 들어선 국내 시장도 로봇이 대세다. 선두주자인 유안타증권의 티트레이더2.0을 필두로 NH투자증권의 QV로보어카운트, 삼성증권의 스마트 어드바이저가 속속 선을 보였고 KB국민은행은 은행권 최초로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업체 쿼터백을 끌어들였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인간 펀드매너저보다 장점이 많다. 첫째. 안면 받칠 일이 없다. 티트레이더2.0은 올 1월 한 달에만 약 150개의 매도 추천을 했다. 지난해 1만여 건의 증권사 리포트 중 매도보고서가 딱 11건이었던 것과 크게 대비된다. 인간 펀드매니저에겐 뻔히 주가 하락이 눈에 보여도 말을 못하는 ‘한국적 정서’가 작동한다. 고객이 떨어져 나가고, 상장회사가 싫어할까 두려워하는 ‘인간적 고뇌’도 있다. 로봇에겐 없는 것들이다.

 둘째, 비용이 덜 든다. 사람보다 수수료를 크게 낮출 수 있다. 미국은 이미 연간 0.25~0.5% 수준으로 사람에게 맡길 때(연 0.75~1.5%)의 절반을 밑돈다. 하루 24시간 불평 없이 일하는 건 덤이다. 셋째, 수익률도 높다. 올 들어 쿼터백은 약 2%대 수익을 냈다. 다른 자산배분운용펀드가 평균 마이너스 3%대인 것에 비교하면 완승이다.

 이쯤 되면 인간 펀드매니저가 왜 필요할까 의문이 들 지경이다. 전부 로봇으로 바꾸면 어떨까. 인간이 마침내 투자 위험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을까. 누구나 주식투자로 돈을 벌 수 있을까. D증권사 사장은 “되레 블랙스완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현실에선 불가능하다는 완벽한 위험의 상징, 검은 백조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로봇에겐 탐욕과 공포가 없다. 시장이 붕괴 위험에 처해도 일제히 ‘팔자’ 한 방향으로 쏠릴 수 있다.”

 주가 예측은 흔히 ‘신도 모른다’고 한다. 신에겐 인간의 탐욕과 공포가 없기 때문이다. 로보어드바이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