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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첫 미국 현직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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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장세정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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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정
지역뉴스부장

헌법 제4조(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에 따르면 북한은 미수복(未收復) 지역이다. 이 때문에 1월 6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일대에서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해도, 지난 7일 평안북도 철산군 동창리에서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해도 대한민국 기자들은 헌법상 영토에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분단이 세뇌시킨 비정상이 너무 당연시되고 있다. 이제 남북 교류의 마지막 숨골 역할을 해온 개성공단 가동마저 전면 중단됐다.

 이런 가운데 미·중의 막후 타협으로 유엔에서 강력한 대북제재안이 마련됐다. 3월이면 한·미 군사훈련이 대규모로 진행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지정학적 갈등과 긴장이 극한으로 치닫고 또다시 마주 달리는 열차처럼 양보 없는 치킨게임이 벌어질까 우려된다.

 하지만 한반도가 냉전시대처럼 화약고가 되도록 결코 방치하면 안 된다. 뭔가 극적 반전이 필요하다. 북핵 문제의 열쇠는 결국 미국 손에 달려 있다. 그렇기에 엉뚱할 수도 있겠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또는 힐러리 클린턴의 평양 방문을 상상해본다. 냉전 이후 아무도 생각 못한 현직 미국 대통령의 쿠바 수도 아바나 방문이 마침 3월에 실현된다.

 오바마가 누군가. 그는 2009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국제 외교와 인류의 협력 강화를 위해 노력했다’는 수상 사유가 너무 빈약해 당시에도 자격 논란이 있었다. 이란 핵협상 타결, 미국과 쿠바의 수교로 뒤늦게 자격을 추가했지만 북한의 비핵화라는 화룡점정이 남아 있다. 미국이 대선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지만 오바마에게 아직 시간과 기회는 없지 않다.

 지금까지 미국의 전직 대통령 중에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 등 2명이 평양을 방문했지만 현직 대통령은 전례가 없다. 1차 북핵 위기가 최고조로 치달아 미국이 영변 원자로를 정밀 타격한다는 말까지 돌았던 1994년 6월 전격 방북한 카터는 김일성을 만나 전쟁을 막았다. 카터는 2002년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 및 국제분쟁 해결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오바마가 우유부단한 햄릿처럼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김정은을 만날 기회는 힐러리에게 돌아갈 수도 있다. 그의 남편인 빌 클린턴은 전직 대통령 신분으로 2009년 8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을 만났다. 억류 중이던 미국 여기자 2명을 구해낸 성과가 있었지만 그는 노벨상과 인연이 없었다.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힐러리가 만약 북핵 해결과 북·미 관계 정상화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 실현에 결정적 공헌을 한다면 노벨 평화상은 그의 몫이 될 것이다.

 칠흑(漆黑) 속에서 여명(黎明)이 잉태되는 것이 자연의 순리(順理)다. 인류 역사에서 종종 ‘평화의 여명’을 앞당긴 힘은 위대한 지도자의 결단에서 나왔다.

장세정 지역뉴스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