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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비 실적 좋아 박정희 대통령 하사금도 받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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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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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은 봉사하는 자리”라는 오세종 할아버지는 매일 오토바이 타고 마을을 살핀다. [프리랜서 김성태]

1960년대 ‘조국 근대화’ 붐은 농촌에도 일었다. 경운기 같은 농기계가 본격 보급됐다. 70년 새마을운동 시작과 함께 지붕개량 작업이 확산됐다. 이런 일은 마을 이장이 주도했다. 요즘도 이장은 행정기관을 대신해 마을 살림을 책임진다.

충남 서천 복대2리 84세 오세종씨
65년 33세에 첫 이장, 총 44년 맡아
“집집마다 통장 몇 개인지도 훤해”

 충남 서천군 판교면 복대2리 오세종(84)할아버지는 이장 경력만 44년이다. 그것도 한 마을에서만 이장을 했다. 마을 주민 87명(70가구)은 주로 논농사를 짓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이장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그는 “이장은 봉사하는 자리일 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주민과 어려움을 함께 한다는 각오로 일하면 신뢰를 얻을 수 있고 이장 자리를 놓고 다툴 일도 없다”고 말했다. <본지 2월 22일자 14면>

 그는 30여 년전부터 지금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날마다 가정방문을 한다. 주민 안부를 살피고 건의사항을 받아 행정기관에 전달한다. 그는 “지금은 어느 집에 통장이 몇 개 있는 지까지 안다”고 했다.

 마을 토박이인 오 이장은 33세 때인 1965년 처음 이장이 됐다. 그는 “마을개발위원회 총무로 일하다 입대해 군생활을 마치고 왔더니 주민들이 이장으로 추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개발위원회 기금을 잘 관리하고 마을 길 넓히기 사업에 앞장선 점 등을 주민들이 눈 여겨 본 것 같다”고 했다.

 그의 이장 역할은 ‘조국 근대화’와 함께했다. 사람 한 명이 간신히 다닐 정도인 마을 길 600m를 경운기가 드나들 수 있게 넓혔다. 군청에서 시멘트를 지원했고, 땅 파고 포장을 하는 건 주민들 몫이었다.

오 이장은 주민을 모으고 작업을 독려했고 그의 부인(83)은 밥을 지어 작업에 나선 주민들에게 대접했다. 또 자신의 땅 1200㎡를 마을 공동 주차장으로 쓰도록 내놨다. 70년대 중반 마을은 퇴비 만들기 실적이 좋아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서 하사금 3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사실 오 이장은 그동안 여러 차례 이장을 그만두려했고 몇 년간 쉬기도 했다. 이장 일에 매달린 탓에 집안 일에 소홀해지는 등 문제가 많아서였다. 지금은 매월 24만원 가량이 지급되지만 80년대까지는 이장에게 나오는 수당이 아예 없었다.

이 때문에 86년에는 한국전력 검침원으로 취업하기도 했다. 91년부터 4~5 년간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부인을 돌보기 위해 이장직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다시 이장을 맡아달라”는 주민들의 계속된 요청을 마다할 수 없었다. 오 이장은 “주민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 만큼 힘닿는데 까지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천=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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