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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이장으로 일한 84세 노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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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년 연임 이장 오세종(84) 할아버지]44년 동안 한 마을에서 이장 일을 보며 봉사하는 노인이 화제다. 주인공인 충남 서천군 판교면 복대2리 이장 오세종(84) 할아버지를 24일 마을에서 만났다. 그가 마을 주민을 위해 쾌척한 땅이 지금은 마을로 통하는 소중한 진입로가 됐다. 오 할아버지가 4륜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 순찰도중 포즈를 취했다.[사진 프리랜서 김성태]

1960년대 ‘조국 근대화’ 붐은 농촌에도 일었다. 경운기 같은 농기계가 보급되면서 마을 길을 넓혔다. 70년 새마을운동 시작과 함께 지붕개량 작업이 확산됐다. 퇴비를 많이 만든 마을엔 포상금을 줬다. 이런 일은 마을 이장이 주도했다. 복지국가 시대를 맞은 요즘도 이장은 행정기관을 대신해 마을 살림을 책임진다.

충남 서천군 판교면 복대2리 오세종(84)할아버지는 60년대부터 지금까지 이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장 재임 기간만 44년이다. 이 마을은 70가구에 87명이 살고 있다. 70%이상은 70세 이상 노인이다.

이 마을 토박이인 오 이장은 33세때인 1965년 처음 이장이 됐다. 그는 “당시 마을개발위원회 총무로 활동하다 7년간 군 복무하다 제대했는데 주민들이 이장으로 추대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마을개발위원회 기금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마을 길 넓히기 사업에 앞장서 참여하는 등 솔선수범 한 것을 주민들이 눈 여겨 본 것 같다”며 “이후 주민들이 임기가 끝나도 계속 맡아달라고 요구해 그만둘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장 역할은 ‘조국 근대화’와 함께 했다. 지게지고 간신히 다닐 정도인 마을 길을 경운기가 드나들 수 있게 넓혔다. 군청에서 시멘트를 주고, 땅을 파고 포장을 하는 것은 주민들 몫이었다. 주민들은 마을 개천에서 골재를 채취하다 나르고 시멘트를 섞어 깔았다. 오 이장은 확성기로 주민을 모으고 작업을 독려했다. 그의 부인은 날마다 밥을 지어 작업에 나선 주민들에게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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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에는 초가 지붕을 스레트로 바꾸는 새마을운동이 시작됐다. 정부가 돈을 낮은 금리로 빌려주고 개인 돈을 일부 보태 지붕을 개량했다. 오이장의 마을은 75년 서천군 전체에서 지붕개량을 가장 먼저 끝낸 마을로 선정돼 포상금 100만원을 받기도 했다. 당시 120여 가구 가운데 기초생활수급자(당시 영세민) 주민 한 명이 돈이 없어 지붕개량을 못했다. 오 이장은 군청에 달려가 스레트를 지원받고 주민 중 목수 5명 등을 동원해 초가집을 하루 만에 없앴다.

마을은 퇴비 만들기 실적이 좋아 박정희 대통령에게 하사금 300만원을 받기도 했다. 오 이장은 “아버지에게도 퇴비 만들기에 참여해 달라고 당부한 적이 있다”며 “퇴비 만들기 실적에 따라 마을에 지원금을 줬기 때문에 주민들이 이장의 말을 잘 따랐다”고 말했다.

오 이장은 몇 차례 이장을 그만 두려고 했다. 농사 등 집안 일에 소홀해 지는 등 손해가 많아서였다. 86년에는 이장에서 벗어나고 싶어 인근 보령으로 가 한국전력 검침원으로 취업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찾아와 “다시 맡아달라”고 하는 바람에 6개월만에 이장에 복귀했다. 91년부터는 수년간 이장직을 내려놨다. 30년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부인을 돌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30년전부터 지금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날마다 마을을 돈다.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주민들의 안부를 살피고 건의사항을 받아 행정기관에 전달한다. 그는 “주민들을 수시로 찾아 다니며 어려움을 나누다 보니 집집마다 통장이 몇 개 있는 지까지 안다”고 했다. 그는 “그 동안 주민이 사망하면 장례를 주도하는 것도 이장 몫이었다”며 “지금까지 50여명의 장례를 직접 치렀다”고 말했다.

오 이장은 “이장은 마을 행정을 책임진다는 점에서 ‘마을 대통령’이라 할 수 있다”며 “하지만 주민 눈높이에서 봉사한다는 마음 가짐을 가지만 신뢰를 얻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천=김방현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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