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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이 비간쯔를 만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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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예영준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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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영준 베이징 총국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야말로 마오쩌둥(毛澤東)의 충실한 계승자다’. 시 주석이 설 연휴를 끝낸 뒤 첫 행보로 인민일보와 신화통신, 중국중앙TV(CC-TV)를 차례로 방문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새삼 떠오른 생각이다.

 홍군을 이끌고 대장정을 마친 마오가 옌안(延安)의 황토고원에서 정풍 운동을 벌일 때 일이니 1942년께의 일이지 싶다. 군사전략가이기도 한 마오는 이렇게 말했다. “적과 싸워 이기려면 두 가지 군대가 필요하다. 하나는 총을 든 진짜 군대다. 또 하나는 문화 군대다. 진짜 군대만으론 적에게 이길 수 없다.” 문화 군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신문과 방송(당시엔 라디오)이다. 마오는 진짜 군대를 창간쯔(槍杆子), 언론 매체 종사자를 비간쯔(筆杆子)라 불렀다. 총(槍)과 붓, 둘 다 막대(杆子) 모양이라 쓴 표현이다. 언론 매체의 역할을 강조한 건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서양 속담과 같지만 뜻은 다르다. 당의 영도에 따라 인민을 단결시키며 여론전, 즉 선전·선동을 수행하는 전위 역할을 언론의 사명으로 보기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시 주석은 두 군대 가운데 창간쯔를 장악하는 데 성공했다. 반부패 캠페인을 통한 가차 없는 숙군과 뒤이은 편제 개혁으로 군부를 휘어잡았다. 이달 초 7대 군구(軍區)를 5대 전구(戰區)로 개편함으로써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그런 뒤 국영 언론 매체를 찾아간 건 창간쯔의 다음 순서로 비간쯔를 휘어잡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3년 전 집권한 시 주석은 언론 분야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해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오랜 측근인 황쿤밍(黃坤明)을 언론 담당인 중앙선전부 부부장으로 보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아닌 게 아니라 시 주석은 시찰을 마친 뒤 3개 매체의 주요 간부들을 한자리에 불러놓고 ‘48자 방침’을 하달했다. “깃발을 높이 들고 대중을 인도하라”로 시작되는 이 지침은 “세계와 소통하라”는 등의 한두 가지를 제외하면 마오쩌둥 시대 지침과 큰 차이가 없다. 그건 공산당의 언론관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은 이 자리에서 “모든 매체는 당의 의지를 체현하고 당 중앙의 권위를 수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임무에는 기관지나 상업지, 뉴미디어 등 매체 종류에 관계없고 시사·오락·사회·국내·국제 등 뉴스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고도 강조했다. 이는 관영 매체뿐 아니라 ‘도시보(都市報)’라 불리는 상업 신문과 상업 방송은 물론 대안 언론 역할을 하고 있는 인터넷 소셜미디어까지 당국이 통제의 고삐를 한층 강하게 죌 것이란 예고처럼 들린다.

 군에 이어 언론까지 장악하면 시 주석의 권력은 마오 부럽지 않게 막강해질 것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마오는 절대권력을 휘두른 나머지 만년에 중국을 질곡으로 빠뜨린 과오를 범했다. 마오의 충실한 계승자인 시 주석이 마오의 공(功)만 따르고 과(過)는 따르지 않기를 바란다.

예영준 베이징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