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만능통장’ ISA가 흥행 성공 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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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경
경제부문 기자

‘내 돈 좀 굴려줄 사람 없을까? 연 5% 수익만 내줘도 좋겠는데….’ 신통찮은 내 재테크 성적표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다. 경제부 기자로서 창피한 얘기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저금리와 증시불안의 여파를 피해갈 도리가 없었다. 2년간 꼬박 부은 적금의 이자는 세금 15.4%를 떼고 나니 쥐꼬리 수준이었다. 한 때 세계적 발명품이라는 찬사까지 들었던 적립식펀드도 ‘박스피(박스권 코스피)’ 앞에선 소용없었다. 참을 인(忍)을 수십 번 새겨가며 적립했는데도 원금을 회복하지 못했다. 적금과 펀드 총액을 합치니 본전. 월급통장에 ‘방치’한 것과 다를 바 없는 허무한 성적이었다. 새삼 자산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하지만 고액자산가가 주고객인 은행·증권사의 프라이빗뱅킹(PB) 센터에는 갈 엄두가 안 났다.

 그런데 이런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금융상품이 다음달 14일 출시된다.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계좌(ISA)가 그 주인공이다. 금융회사에 자산관리를 맡기는 일임형 ISA에 가입하면 예금·펀드·파생상품에 맞춤형 분산투자를 해준다. 중산층·서민도 전문가의 자산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최대 250만원 수익까지 비과세, 그 이상의 수익에는 9.9%의 저율 분리과세를 하는 세제 혜택도 있다. 게다가 자산을 맡긴 금융회사가 수익을 못 내면 다른 금융회사로 갈아탈 수도 있다.

 ISA 출시는 분산투자 문화가 자리 잡는 계기도 될 수 있다. 그간 해외펀드·브라질국채·주가연계증권(ELS)처럼 뜨는 상품에 ‘몰빵 투자’를 했다가 쓴맛을 본 투자자가 ISA를 대안으로 택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ISA를 내놓은 명분은 가계재산 증대다. 이를 통해 내수소비 증가 → 기업실적 개선 → 투자·고용 증가 → 경제성장률 상향이라는 선순환을 이끌어내겠다는 취지다. 다만 그러려면 전제 조건이 있다. 우선 5년으로 제한한 의무가입기간은 줄일 필요가 있다. 재형저축(7년)과 소득공제장기펀드(5년)는 세제 혜택이 있었지만 긴 의무가입 기간 때문에 흥행에 실패한 전례가 있다. 이와 함께 ISA가 금융회사의 수수료 장사 상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금융회사 간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보호 의무 책임을 철저히 부과하는 대책도 필요하다. 부디 ISA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해 넓은 집으로 이사 가고, 좋은 차로 바꿔 내수경기 개선에 기여하는 애국자가 늘길 희망한다. ISA의 흥행을 바라는 이유다.

이태경 경제부문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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