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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친박 공천 갈등 배경엔 총선 후 내다본 헤게모니 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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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무성 대표와 서청원 최고위원. 두 사람이 또 충돌했다. 정확히 말하면 김 대표와 친박계의 충돌이다. 2014년 7월 당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가 승리해 대표가 된 뒤 잊을 만하면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공천위가 우선추천지역 결정 땐
김 대표 사실상 막을 카드 없어
최고위가 거부권 행사하더라도
공천위 3분의 2 의결 땐 따라야

왜 이 갈등은 끊이지 않는 걸까. 지금의 새누리당은 역대 집권당들과 다른 기이한 모습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를 만든 집권 세력은 친박계다.

하지만 당내에서 친박계는 주류가 아니다. 김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가 주류다. 당의 헤게모니(지배력)로 주류·비주류를 나누면 그렇다.

과거의 여당은 대통령을 뒷받침하는 일사불란한 당·청 일체의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지금의 새누리당은 그런 구조에서 벗어나 있다. 갈등의 뿌리는 여기서 출발한다.

 4·13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얻어 승리하지 못하면 박근혜 정부의 임기 후반부 국정운영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게 친박계의 위기의식이다. 그래서 참신한 신진인사를 영입하고 싶어하고, 이들로 신주류를 형성하고 싶어한다.

친박계 실세인 최경환 의원이 월간중앙과의 인터뷰(18일 발매)에서 “정권을 만든 사람들이 정권의 성공을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그것을 의미한다.

 ‘상향식 공천’으로 대표되는 경선을 고집하며 전략적인 공천을 거부하고 있는 김 대표의 시선은 다르다. 김 대표와 주변 인사들은 총선 후에는 미래세력들이 각축전을 벌일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현재의 기득권을 포기할 수 없다. 친박으로 분류되는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성과 없는 사람은 치겠다”거나 “개혁공천을 하겠다”며 김 대표와 마찰을 일으키는 건 그 때문이다.

 김욱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교수는 “새누리당의 공천 갈등은 대통령의 통치 영향력이 약해지는 시점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친박계와 비박계의 충돌”이라며 “결국 총선 이후 상황을 바라본 당내 두 세력의 전초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각론에서 갈등이 되는 건 우선추천제다. 이 위원장은 영입인사를 대상으로 우선추천제를 사실상의 전략공천 통로로 쓰자는 주장을 편다. 경선을 주장하는 김 대표는 우선추천제의 남용을 극구 반대하고 있다. 새누리당의 당헌 제103조는 “각종 공직선거(지역구)에 있어 우선추천지역을 선정할 수 있다.

‘우선추천지역’으론 ▶여성·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의 추천이 특별히 필요하다고 판단한 지역 ▶공모에 신청한 후보자가 없거나 여론조사 결과 등을 참작하여 추천 신청자들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한 지역 등을 적시하고 있다.

 결국 이 조항을 넓게 해석하려는 이 위원장(친박계)과 가능한 좁게 해석하려는 김 대표(비박계)가 대립하고 있다. 이 위원장이 17일 다른 위원과 협의 없이 “최대 54개 지역구에 우선추천제를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게 단초다.

반면 비박계 권성동 의원은 "객관적 기준부터 명확히 잡지 않고 아무 근거도 없이(우선추천을) 확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김 대표의 비서실장인 김학용 의원은 “우선추천의 본래 취지가 악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문자메시지까지 돌렸다.

 문제는 당 대표가 임명한 공천위원장이 대표와 다른 주장을 할 때 어떤 경우의 수가 있느냐다. 공교롭게도 김 대표에게 공천위의 결정을 막을 카드는 없다. 공천위가 특정 지역구를 우선추천지역으로 정하면 당 최고위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공천위가 다시 위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결정하면 최고위는 따라야 한다.

김 대표가 이 위원장을 끌어내릴 카드도 마땅찮다. 최고위원회가 공천관리위원장을 임명하는 규정은 있지만 해임하는 규정은 명시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비박계는 의원총회를 열어 이 위원장을 규탄하는 수준의 정치적 압박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당 내부 규정에 대한 해석 다툼을 명분으로 친박·비박계의 주도권 싸움이 확대되는 양상”이라며 “총선 후 헤게모니를 놓칠 수 있다는 절박감이 공천룰 논란을 계기로 수면 위로 표출됐다”고 분석했다.

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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