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슈추적] 지역구당 경선비용 1억원대…후보들 “경선 아닌 돈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새누리당 송태영(청주 흥덕을) 예비후보는 지난주 은행 대출을 알아봤다. 집이 없는 그가 받을 수 있는 건 신용대출뿐이었다. 그는 “1500만원 정도는 마련해 놨는데, 경선비용이 이보다 더 나오면 큰일”이라며 “가난한 사람은 정치도 하지 말란 건지…”라고 말했다.

경선비용, 후보 100% 부담 원칙
여론조사+현장투표+안심번호 등
후보 3명땐 1인당 3600만원 들어
전문가 “정치권 진입장벽 될 수도”

 새누리당 후보들이 경선 참여비용 마련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 체제가 ‘완전 상향식 공천’을 목표로 세우고 전국에서 여론조사 경선을 예고하고 있는데, 경선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경선비용을 후보들이 100% 부담하기 때문이다. “국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준다”는 취지로 시작한 정치실험의 그늘이다.

새누리당 핵심당직자는 “후보들에게 비용을 갹출해 경선을 치르는 건 법률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정당의 오랜 관행”이라고 말했다.

기사 이미지

 ◆한 지역 여론조사에 7000만원까지=새누리당은 최근 주요 여론조사 업체들에 “한 지역구당 2000명을 조사하는 데 얼마인지 견적을 내달라”고 요청했다. 업체들은 2000만원 이상을 적어냈다. 이번 새누리당 경선에는 1·2위 후보의 지지율이 오차범위 이내일 때 둘만 놓고 한 번 더 여론조사를 하는 결선투표제가 도입됐다. 결선투표를 하게 되면 여론조사 비용이 4000여만원으로 올라간다.

  여기에 새누리당 공천관리위원회(공천위)가 15일 도입하기로 최종 결정한 안심번호제를 위한 비용을 추가해야 한다. 안심번호제는 이동통신사가 확보한 성별·연령 자료 등에 맞춰 휴대전화 사용자를 분류한 뒤 이들의 번호를 가상의 착신전용번호(안심번호)로 전환해 주는 제도다. 안심번호로 경선 여론조사를 할 때 새누리당은 전환 1건당 330원을 이동통신사에 주기로 했다.

2000명을 여론조사하기 위해선 보통 50배인 10만 명 정도의 번호를 확보해야 한다. 한 지역에 3000여만원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결국 한 지역을 여론조사하는 데만 7000여만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현행 253개 선거구에서 모두 여론조사를 실시한다고 가정하면 177억여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더불어민주당도 안심번호제를 도입하기로 했으나 새누리당보다 비용은 덜 드는 구조다. 경선 없이 지도부가 공천하는 전략공천을 10~20%까지 할 계획인 데다 경선도 미리 300~1000명의 선거인단을 정해 놓고 이들에게 여론조사를 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기사 이미지

  ◆‘체육관 투표’ 하면 1인당 최소 2000만원=여론조사 비용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새누리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경선 원칙은 ‘일반 유권자 여론조사(70%)+당원 투표(30%)’다. 당원 투표도 전화조사로 할 수 있지만, 직접 당원들을 불러모아 ‘체육관 투표’로 할 수도 있다. 여론조사든 현장투표든 당원 의사를 확인하는 데 추가비용이 든다.

특히 현장투표를 택할 경우 장소대여료나 투·개표 진행비 때문에 400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안심번호 전환 및 결선여론조사(7000여만원) ▶당원 현장투표(4000여만원)까지 다 치르는 지역구는 경선비용이 1억1000여만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와 공천위는 “예비후보가 10여 명인 곳은 4~5명까지, 5명 안팎인 곳은 2~3명으로 줄인 뒤에 경선을 실시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후보수가 줄어들 경우 1인당 부담은 커진다. 현장투표까지 실시하는 지역에선 5명이 비용을 나눠도 1인당 참가비용이 2000만원이 넘는다. 후보가 네 명이면 2700만원, 3명이면 3600만원이 넘는다.

  ◆“경선비용 생각하면 한숨”=이 때문에 “경선비용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원주갑 박정하 예비후보) 는 불만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다선 의원 출신 예비후보는 “경선에만 몇 천만원이 드는 선거는 처음 본다”며 “ ‘돈선’인지 헷갈린다”고 말했다. 이들에 비해 선거가 있는 해엔 후원금을 3억원까지 거둘 수 있는 현역의원들은 상대적으로 느긋하다.

▶관련 기사무전·무시·무조직…2030 흙수저 후보들 3무 설움

 서울대 박원호(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여론조사가 포함된 경선으로 정당의 후보를 결정하는 데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 중 하나가 비용”이라며 “비용이 정치권 진입장벽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남궁욱·박유미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