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토익에 관한 고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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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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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오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4학년

이른 아침 출근 시간에 나는 만원 버스에 몸을 싣는다. 토익학원으로 향하는 버스에는 나처럼 한 손에 단어장을 든 청년들이 더러 보인다. 히터와 버스에 꽉 찬 사람들의 체온 때문인지, 스터디에서 단어시험에 통과하지 못할 거라는 초조함 때문인지 내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다. 수업 30분 전부터 학원 강의실 앞에는 학생들이 줄을 서 있다. 200명이 넘는 수강생이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방학이 끝나기 전에 토익 점수를 따야 한다는 절박감에서다.

 5월이면 토익이 새로운 뉴토익으로 바뀐다. 문제는 더 어려워지고 경쟁은 더 치열해진다. 토익이 뭐라고 우리는 방학까지 헌납하며 목을 매는 걸까. 3개월, 5개월을 토익에 매진하는 만큼 우리는 무엇을 얻을까. 토익으로 우리가 얻는 것은 늘어난 영어 실력도 아닌 단지 점수일 뿐이다. 그깟 숫자를 얻기 위해 한 달에 40만원이 넘어가는 학원비를 쓰기도 하고, 꿈에 그리던 배낭여행을 포기하고 방학을 학기보다 바쁘게 보낸다. 어느 학원 강사는 토익 하기도 바쁜데 연애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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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한 조사에 따르면 취업준비생의 절반이 700점 이상의 토익 점수를 보유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사실 토익으로는 영어 실력을 판가름할 수 없다. 각종 학원 광고에서도 말하듯이 토익은 기술이기 때문이다. 문제를 풀 때 해석조차 하지 않고 공식처럼 외워서 답을 찾는다. 그런데도 왜 기업은 토익 점수를 요구하는 걸까. 때론 영어가 필요하지 않은 자리에서도 토익 점수가 필수다. 자동차 회사의 운전직이나 중견기업 경리직원을 뽑는데도 그렇다. 마치 토익 성적을 사회에 발을 내딛는 청년들의 기본 자격 사항처럼 여긴다. 하긴 대학에서도 교양과목에 토익 관련 수업이 있고, 졸업 자격으로 토익 성적을 요구하기도 한다. 정부가 스펙이 아닌 직무 역량으로 직원을 채용하도록 유도한다지만 대학생에게 토익은 이미 스펙이 아닌 기본이 돼 있다.

 왜 하는지도 모르고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하는, 아니면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해 안 할 수도 없게 된 토익은 우리에게 ‘계륵’이 돼 있다. 사실 토익뿐 아니라 이력서의 목록에는 성별·학교·전공·키 등 왜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기업과 기성세대들은 토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청년들도 왜 토익을 하는가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확실한 것은 우리는 지금 토익학원의 앉을 자리조차 경쟁해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안진오 배재대 정치언론안보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