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80대 男 주먹으로 엉덩이 누른 건 무죄…허벅지는 유죄

중앙일보

입력

만원 지하철에서 80대 남성이 급하게 내리다가 앞에 서 있던 20대 여성의 엉덩이를 주먹으로 눌러 밀었다면 성추행한 것일까.

서울 북부지법 형사11부(부장 김경)는 2014년 10월 19일 오후 5시20분쯤 지하철 5호선 장한평역을 지나던 전동차에서 김모(21·여)씨의 엉덩이를 주먹으로 누른 혐의(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와 지난해 6월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계단에서 여고생 오모(18)양의 허벅지를 만진 혐의(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강제추행)로 국민참여재판에 넘겨진 김모(80)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고 10일 밝혔다. 법원은 김씨에게 성폭력 치료 강의 40시간도 명령했다.

법원은 김씨가 지하철역에서 여성의 엉덩이를 주먹으로 누른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허벅지를 만진 혐의에 대해선 유죄를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에 참석한 시민 배심원단 7명도 여고생을 추행한 일에 대해선 5대 2의 의견으로 김씨의 유죄를 인정했지만 주먹으로 여성의 엉덩이를 누른 혐의에 대해선 모두 무죄 의견을 냈다. 재판부도 이 의견을 받아들였다.

재판에서 피해자 김씨는 “왼쪽 엉덩이를 도장으로 찍듯이 꾹 눌러 넘어질 뻔 했다”며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피고인 김씨는 “당시 화장실이 급해 빨리 내리려고 했는데 문 앞에서 김씨가 막고 서 있어 주먹으로 밀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여고생을 추행한 사건에 대해서는 “피고인 김씨는 수사 단계에서부터 법정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손이 우연히 피해자 신체에 스친 것이라고 일관되게 변명하며 범행을 극구 부인했다”면서도 “이전에 별다른 전과가 없고 고령인 점을 참작했다”고 유죄 이유를 설명했다. 엉덩이를 누른 사건에 대해서는 “성추행을 하려 신체 접촉을 하는 일반적인 행위와 사뭇 다르고, 화장실에 가기 위해 급하게 전동차에서 내리려 ‘비키라’는 의미로 밀친 행동으로 보여진다”고 판시했다.

조한대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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