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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스키월드컵 D-1] 안방에서 외로운 싸움 알파인 국가대표 김현태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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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일곱 살 때 처음 스키를 탔다. 큰 산 아래 감자밭이 있는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그는 틈만 나면 눈밭에서 뒹굴었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이 그의 고향이다. 소년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스키부 형들처럼 선수가 되려고 마음먹었다. 그의 나이 아홉 살 때, 스키가 마냥 재밌었던 시절이었다.

2016년 2월 강원도 정선군 북평면에 정선 알파인 경기장이 들어섰다. 2018년 2월 평창올림픽이 열릴 장소다. 눈밭을 구르던 소년은 어느덧 스물여섯 살 청년이 됐다. 그이 이름은 김현태(26·울산시). 16개국 59명의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6~7일 이틀동안 열리는 국제스키연맹(FIS) 알파인 스키 월드컵에 출전하는 유일한 한국 선수다.

그가 월드컵 대회에 참가한 것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다. 한국 스키의 수준은 세계 정상급과는 큰 격차가 있다. 활강 전문 대표팀이 지난해에야 비로소 꾸려졌을 정도다. 이번 월드컵에는 한국선수들이 참가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김현태는 이 코스에서 스키를 타본 뒤 용기를 냈다. 그는 지난달 26일부터 정선 알파인 경기장에서 열린 수퍼대회전 테스트런(공식 연습)에 참가했다. 15명의 한국선수 중 1위를 차지한 뒤 과감하게 이 코스에 도전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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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태의 주종목은 회전과 대회전. 스키를 타고 길이 1000m 안팎에 표고차(출발과 도착 지점의 고도 차이)가 200~450m인 코스를 내려오는 종목이다. 속도도 필요하지만 기술이 더욱 중요한 종목이다.

김현태는 이번 대회에선 수퍼대회전에 도전한다. 수퍼대회전은 회전·대회전에 비해 기문 수가 적다. 가파른 경사를 빠른 속도로 타고내려가야 하는 종목이다. 평균 속도 시속 100㎞ 이상으로 회전·대회전(시속 50~90㎞)보다 훨씬 빠르다. 자칫 방심하면 큰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김현태가 테스트런에서 안정된 기량을 보이자 대한스키협회는 그를 월드컵에 출전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번 월드컵에선 활강과 수퍼대회전 등 스피드를 다투는 종목만 열린다.

김현태는 지난주 테스트런에 참가해 이 코스에서 처음으로 스키를 탔다. 이전에 그가 경험했던 스키장은 표고차 400m 정도에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코스였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수퍼대회전의 경우 표고차가 650m나 되고, 최고 경사가 33도나 되는 난코스다. 웬만한 스키 실력으론 아예 내려오기도 어려울 정도다.

스키 경력 17년인 김현태에게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김현태는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서 (정선 알파인 경기장의) 슬로프를 봤다. 한마디로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었다"면서 "스키를 타고 내려가는데 죽는 줄 알았다. 청룡열차를 타는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공포와 싸운 결과는 꽤 괜찮았다. 4차례 레이스에서 모두 1등으로 들어오자 두려움은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어릴 때 취미 삼아 스키를 탔던 김현태는 스키 선수가 된 뒤 승승장구했다. 중학교 3학년 땐 출전 대회 10개 종목 전관왕을 차지했고,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2008년 겨울체전 3관왕에 올랐다. 그러나 2011~12 시즌 슬럼프가 찾아왔다. 성적이 더 오르지 않자 스키가 재미없어졌다. 김현태는 2012년 3월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강원도 인제 최전방(GOP)에 배치된 그는 북한과 맞닿아있는 비무장지대에서 통문을 관리하고, 경계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군생활을 하면서 그는 "스키를 다시 사랑하게 됐다"고 털어놓았다. 김현태는 "초·중학교 때 라이벌이었던 정동현(28)·경성현(26·이상 하이원) 등이 좋은 성적을 내고, 올림픽에도 나가는 걸 봤다. 운동할 때가 정말 행복했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2013년 12월 제대한 그는 곧바로 평창의 스키 클럽에 들어가 3개월 동안 하루 7~8시간씩 강훈련을 했다. 그리고 2014년 3월 다시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지난해 2월엔 알파인 세계선수권 대회전에서 43위에 올랐고, 9월 중국 극동컵 회전 종목에선 1위에 오르면서 등 국제 대회 경험도 쌓았다. 지난해 2월 겨울체전에선 4관왕(회전·대회전·수퍼대회전·복합)에 올랐다.

김현태의 수퍼대회전 세계 랭킹은 943위다. 그러나 홈어드밴티지를 최대한 활용하면 2년 후 평창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낼 수도 있다. 이번 스키 월드컵이 그 전초전이다. 아버지 김준기(58)씨는 이 코스 심판, 누나 김현지(28)씨는 코스 정비를 맡고 있다. 동생 김현수(21)는 국가대표 상비군이다. 한마디로 '스키 패밀리'다.

4일에는 참가선수 57명이 1차 공식 연습을 했다. 2014 소치 겨울올림픽 수퍼대회전 금메달리스트 셰틸 얀스루드(노르웨이), 올 시즌 월드컵 랭킹 종합 1위 마르첼 히르셔(오스트리아) 등이 코스를 점검했다. 얀스루드는 "코스 양편에 나무가 많은 무척 흥미로운 코스였다" 고 말했다.

정선=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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