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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달리는 차 트렁크에서 사람 손이 '쓱'…납치범 잡은 '구조의 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월 29일 승용차 트렁크 밖으로 사람 손이 왜?

저기 트렁크에서 계속 움직이는 거…. 사람 손 아니야?

오후 1시 50분. 직장인 이모(32)씨는 차를 타고 교대역 인근 주택가 골목을 지나다가 심장이 멎을 뻔 했다. 앞에 가는 외제차 트렁크에서 사람 손이 불쑥 삐져나온 것이다. 오른쪽 후미등이 떨어져 나가 있었고 그 구멍으로 누군가의 손이 들락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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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속력을 올려 앞 차에 바짝 따라붙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5분 정도 시간이 흐르고 앞차가 갑자기 우회전을 하면서 길이 엇갈렸다.

회사에 도착한 이씨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곧바로 블랙박스 메모리칩부터 꺼내 사무실로 뛰어 올라갔다. 영상을 틀자 주변에 모여든 회사 동료들이 웅성거렸다. 분명히 사람 손이었다. 이씨는 전화기를 들었다.

산 사람이 확실해요. 트렁크에 갇힌 사람이 손을 흔들면서 구조를 요청하고 있었어요.

오후 2시 30분. 서초경찰서 강력팀으로 이씨의 신고가 접수됐다. 6개 강력팀이 즉시 투입됐다. 서울 전지역에서 공조수사가 시작됐다.

이 차, 우리 팀장님이 렌트한 차인데…

차량 소유주는 서울 남대문에 있는 한 렌터카 회사였다. 회사 영업팀장인 박모(31)씨가 차를 쓰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박씨가 트렁크 안에 갇힌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인천과 경기도 일대 경찰들도 대거 공조수사에 나섰지만 차량 행방은 오리무중이었다. 박씨의 아버지도 차량의 행방을 몰랐다.

언니 차요? 아마 정비센터에 수리 맡겼을 텐데요?

의문은 박씨의 여동생과 연락이 닿으면서 풀렸다. 차량은 서초동의 한 정비센터에 있었다. 차를 운전한 사람도, 트렁크 안에 갇혀있던 사람도 그 곳에 있었다.

트렁크 쪽에서 잡음이 들린다고 해서, 직접 운행하면서 수리를 했는데…

알고보니 트렁크 밖으로 나온 손은 정비센터 직원의 손이었다. 박씨가 해외로 휴가를 떠나기 전 수리를 맡긴 정비센터의 직원들이 시운전을 하며 수리를 하다 벌어진 촌극이었던 것. 이들은 밀폐된 공간에 오래 있을 경우 위험할 수 있는 생각에 우측 후미등을 떼어 ‘숨구멍’을 만들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오후 6시 30분. 서울ㆍ경기ㆍ인천 경찰이 힘을 합친 납치범 추적은 그렇게 4시간 만에 끝났다.

◇ 2월 2일  나흘 만에 또 접수된 납치 신고

트렁크 안에 여자가 있는 것 같아요.”

오후 7시 25분. 서초경찰서에 나흘 만에 비슷한 신고가 접수됐다. 반포대로를 달리는 하늘색 스파크 차량 트렁크 밖으로 여자의 머리카락이 보인다는 내용이었다. 납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반포지구대에서 곧바로 출동했다. 차량은 영등포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동선을 따라 강남경찰서와 영등포경찰서에 공조 요청을 했다. 2시간 뒤, 경찰은 당산동 인근에서 문제의 차량을 잡아 세웠다.

트렁크를 잠시 열어주시겠습니까? (경찰)

무대용 소품밖에 없는데… (운전자)

운전자 고모(27)씨의 말대로 트렁크 안에서 경찰을 기다린 건 사람이 아닌 긴 머리 가발이었다. 가발 일부가 트렁크 바깥으로 삐져나와 착각을 일으켰던 것. 서초서 강력팀을 긴장하게 했던 납치 신고는 2시간 만에 또다시 해프닝으로 끝났다.

◇ 2월 3일  오인 신고했는데도 감사패 준 이유는?

오전 9시. 트렁크 속 정비 기사를 납치 피해자로 착각했던 이모씨가 서초경찰서를 찾았다. 경찰서장이 수여하는 감사장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씨의 신고가 사건으로 처리되지 않아 신고보상금은 받을 수 없지만, 신속하게 대응한 시민의식을 높게 산 것이다.

귀중한 실전훈련 한 셈이죠.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 경찰이 얼마나 빨리 움직일 수 있는지 확인한 계기가 됐어요.

-서초경찰서 오준식 강력3팀장

백수진 기자 peck.soo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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