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가게, 작년 652곳 이름표 떼…정부도 슬그머니 발 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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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안정 모범업소를 ‘착한 가게’로 선정해 인센티브를 주겠다.”

5년 전 내놓은 물가안정 대책
저물가에 올해 예산 전액 삭감
상인 “전시행정에 놀아난 기분”
관리예산 끊긴 지자체도 아우성

2011년 7월 당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물가를 잡겠다며 내놓은 대책 중 하나다. 다른 가게보다 음식 가격을 낮춘 식당 등을 착한가격업소(이하 착한가게)로 지정해 각종 지원을 하고 정부가 홍보도 해주겠다고 했다.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대 중반이었다.

그러나 시행 6년째인 현재 착한가게는 애물단지 신세가 됐다. 0~1%대 저물가가 이어지면서다. 정부는 착한가게 관리에서 사실상 손을 뗐고 관련 예산도 올해 전액 삭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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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착한가게를 정기점검하던 주부 물가모니터단 720여 명에게 월 12만원씩 지급하던 예산이 올해 모두 삭감됐다”고 말했다. 8억원 정도다. 애초 착한가게를 기획한 기재부 측은 “우리 소관이 아니라 모르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윤호 착한가게 전국연합회장은 “언제는 물가 안정에 기여한다며 치켜세우더니 저물가가 되니까 정부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전시행정에 놀아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본지가 16개 시·도를 상대로 전수조사를 한 결과 착한가게로 지정된 업소는 지난해 12월 말 기준 6191곳(행자부 집계는 6206곳)이다. 전년 대비 345곳이 줄었다. 1년 사이 휴·폐업 등으로 지정이 해제된 곳은 652곳, 신규 지정은 307곳이다.

음식 재료값 인상을 견디지 못하고 가격을 올려 지정 기준에 미달하거나 자진해서 착한가게 표찰을 반납한 곳도 140여 곳에 달했다.

서울 중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철규씨는 “가격을 올리고 싶어도 착한가게 표찰을 보며 꾹 참았던 업주들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값을 올린 곳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착한가게는 업종 평균 이상으로 가격을 올리면 지정이 취소된다.

정윤호 연합회장은 “착한가게의 80~90%는 영세업소”라며 “착한가게 표찰이라도 걸어두면 손님들이 더 올까 하는 기대에 떼고 싶어도 떼지 못하는 사장 이 많다”고 말했다.

정부 지침에 따라 착한가게를 지원·관리하던 지방자치단체도 아우성이다. 대구 시청 관계자는 “중앙정부가 갑자기 예산을 없애버리고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꼴”이라며 “상·하반기 한 번씩 해야 하는 정기점검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충북도청 관계자는 “앞으로 어떻게 운용하겠다는 후속 대책이나 세부 방안이 내려오지 않아 사실상 업무가 마비된 상태”라고 전했다.

곳간 사정이 어려운 광역단체는 기초단체(시·군·구)로 떠넘기는 곳도 적지 않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도에 편성된 예산이 없어 시·군이 알아서 하는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지자체마다 예산도 들쑥날쑥이다. 본지가 16개 시·도의 올해 착한가게 예산을 조사했더니 광역단체 자체 예산이 1억원을 넘는 곳은 서울·경북·제주 세 곳뿐이었다. 다른 시·도는 5000만원 안팎이다. 착한가게가 909곳인 경기도는 아예 예산이 편성되지 않았다. 305곳인 인천은 700만원에 불과했다.

정윤호 연합회장은 “그동안 지원이라고 해봤자 종량제 쓰레기 봉투 몇 십 장 주고 상·하수도비를 감면해 주는 정도였다”며 “지자체장이 관심을 갖는 일부 지역을 빼고는 홍보를 비롯해 제대로 운영되는 곳이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치 모임이나 사단법인 형태로 착한가게 정신을 이어가고 싶어 정부에 도움을 요청해도 묵묵부답”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행자부 측은 “향후 착한가게 점검에 행자부가 운용하는 생활공감정책모니터단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는 “생활공감모니터단은 정부에 정책을 제안하는 자원봉사단체 성격이 강하다”며 “4000여 명이라지만 실제 활동하는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아 전국에 있는 착한가게를 관리·점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김태윤 기자 pin2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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