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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아낌없이 주는 당신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8면

그림우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는 한 소년에게 열매며 가지며 모든 것을 내주고도 더 못 줘서 미안해하는 사과나무가 나온다. 실제로 나무는 인류에게 필요한 산소·목재 등을 대가 없이 제공해 준다. 이런 존재가 그리운 시대이나 글쓰기에선 아낌없이 주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

 “대가 없이 제공해 준다”를 “대가 없이 제공한다”고 하면 어떨까? ‘제공하다’는 무엇을 내주거나 갖다 바치다는 뜻의 동사다. 제공하는 것이 곧 주는 것이다. ‘제공해 준다’는 사실상 중복 표현이다.

 동사 뒤에서 ‘-어 주다’ 구성으로 쓰이는 보조동사 ‘주다’는 다른 사람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함을 나타낸다. “동생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겠니?” “학생들에게 간식을 나눠 줬다”처럼 사용한다. 이야기하는 사람 자신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것을 가리킬 때도 있다. “네가 여기까지 와 줘서 정말 큰 힘이 됐다”와 같은 경우다. “뺨을 한 대 때려 주고 싶었어!”처럼 동작을 강조하는 역할도 한다.

 문제는 의미를 더하거나 말맛을 보태는 구실을 하는 경우가 아닌데도 보조동사 ‘주다’를 남발하는 데 있다. 말이 중복되는 군더더기 표현일 때는 빼는 게 좋다.

 “학습 동기를 부여해 주는 이곳의 교육 방식이 아이 스스로 목표를 세워 공부하도록 만들었다”의 경우 ‘부여해 주는’을 ‘부여하는’으로 고치는 게 낫다. ‘부여하다’는 사람에게 권리·명예·임무 따위를 지니도록 해 주다, 사물이나 일에 가치·의의 등을 붙여 주다는 뜻의 동사다. 보조동사 ‘주다’를 굳이 덧댈 필요가 없다.

 “계약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읽어 봤지만 보증금을 반환해 준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었다”도 마찬가지다. ‘반환하다’가 빌리거나 차지했던 것을 돌려주는 것이므로 “보증금을 반환한다는 내용”이라고 하는 게 바람직하다.

 “자연이 선물해 준 동굴의 신비로운 모습에 모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역시 “자연이 선물한 동굴의 신비로운 모습”이라고 하면 충분하다. ‘선물하다’가 남에게 어떤 물건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물한’ 대신 ‘선사한’을 써도 된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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