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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포츠머스 조약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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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붉은색 벽돌 건물은 평범했다. 초등학교 같은 직사각형의 3층 건물. '빌딩 86'이란 숫자 이름만큼이나 무미건조한 외관. 건물 벽의 기념 동판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 순간 건물은 역사의 거칠고 긴 호흡을 했다. '이곳에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초청에 의해 러시아와 일본 외교사절의 평화회담이 열렸다.

1905년 9월 5일 오후 3시47분 두 제국 간 전쟁을 끝내는 포츠머스 조약이 체결된 빌딩'. 동판 위 글자들이 살아움직이면서 나의 숨을 잠시 멎게 했다. 러.일전쟁→태프트.가쓰라 밀약→포츠머스 조약→일본의 한국 강점으로 이어지는 한세기 전 역사 속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역사의 현장은 살아 있었다. 러.일 양국은 그곳에서 한달간 협상 끝에 한반도 주변에서 벌인 18개월의 전쟁을 마감했다. 그것으로 제국주의 질서가 새로 짜였다. 일본의 한국 지배는 국제 공인을 받았다. 구한말 약소국의 비애가 담긴 곳. 지난달 말 그곳으로 달려갔다. 노무현 정권은 북한 핵 문제를 놓고 어쩔 줄 모른 채 표류하고 있다. 동북아는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1백년 전과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다. 그 한심한 상황이 나의 길을 재촉했다.

포츠머스. 미국 동북부 뉴햄프셔주, 인구 2만명의 항구도시. 보스턴(매사추세츠주)에서 북쪽으로 1시간15분쯤 차를 몰았다. 도시 내 해군기지 안에 그 건물은 있었다. 1백년 된 건물은 그때처럼 공창(工廠)관리사무실. 회담을 주선한 시어도어 루스벨트(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먼 삼촌)는 워싱턴의 후덥지근한 여름 날씨를 피해 휴양 도시 안의 이곳을 제공했다.

군사보안 구역 내 이 건물이 공개된 것은 87년. 기지 내 박물관이 문을 열고부터다. 그나마 2년 전 9.11 테러로 일반 관람은 중단상태다. 안내자인 박물관 최고참 관리원 월트 로스. 그는 "이곳을 보는 것은 행운이다. 지난 10년의 내 기억으론 여기에 온 한국 언론인은 당신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건물 2층 구석을 개조해 만든 조그만 전시실. 조인식 당일 항해일지, 일본 협상대표인 고무라 외상이 쓰던 가죽 의자, 협상의 스타였던 러시아 대표인 비테의 활동 장면들, 중재외교의 솜씨를 과시했던 루스벨트의 초상화 등이 전시실을 휘어잡고 있었다. 전시실의 코드는 평화. 건물의 애칭도 '평화 빌딩'. 협상 타결 후 포츠머스 헤럴드지 1면 상단은 평화라는 제목으로 차 있었다. 다음해 노벨 평화상은 루스벨트가 받았다.

로스에게 말했다. "강대국엔 포츠머스의 이미지는 평화지만, 한국은 비참한 운명의 시작이다."그는 "제국주의 시대의 비극"이라고 답했다. 평화를 지킬 힘과 능력이 없는 국민은 평화를 맛볼 자격이 없다. 구걸하는 평화는 썩고, 국론은 갈리고 평화를 잃는다. 평화의 속성은 포츠머스 회담 때나 지금이나, 한반도나 다른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전시실엔 일본의 기세가 느껴진다. 일본 쪽 전시물이 많고, 그동안의 관람객 대부분이 일본인이었다. 러.일전쟁 승리로 세계 5대 강국으로 올라선 일본. 후손들이 으스댈 만한 과거사의 장면이다.

그 일본이 동북아의 전면에 재등장하고 있다. 러.일전쟁 때처럼 미국의 후원을 받고 있다. 북한의 핵무기 공갈과 떼쓰기에 당당하게 맞서지 못한 채 북한 편을 드는 듯한 한국 정부의 모호한 처신에 미국은 질려버렸다. 미국은 한국을 제쳐놓고 일본을 밀어주고 있다. 그 기회를 교묘히 활용해 군사대국으로 나선 일본이다. 중국도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

그런 상황을 야기한 김정일 정권, 한국 내 친북 좌파 정치인과 지식인들은 우리 역사에 치명상을 입혔다. 우물안 개구리의 폐쇄적 민족주의는 세계사의 외톨이가 된다. 나라는 혼란에 빠지고 민족은 고통을 받는다. (뉴햄프셔州 포츠머스에서)

박보균 논설위원 (뉴햄프셔州 포츠머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