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인 종로상회 대표의 이색 도전] 직원이 주주인 직영점으로 승부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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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맹점에서 직영점 중심으로 방향 선회 … 국산 생 돼지고기로 계속 도전

베이비부머의 은퇴와 맞물려 ‘돼지고기 프랜차이즈’가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외식 프랜차이즈 종로상회도 그중 하나다. 돼지고기가 메인 메뉴다. 특이한 점도 있다. 여느 프랜차이즈와 달리 ‘국산 생고기’만 취급한다. 이게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국산’ 돼지를 그것도 ‘생(生)’으로 취급한다는 건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불문율에 가까운 일이었다. 국산 돼지는 수입산과의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가격 변동폭도 크다. 한 달 사이에도 가격이 2~3배로 널뛰는 게 국산 돼지고기다. 전국 매장에 비슷한 가격을 유지해야 하는 프랜차이즈의 특성상 국산 돼지고기로는 사업이 힘들다는 시각이 많았다.

"좋은 고기는 유행을 타지 않습니다”
다소 무모한 도전에 나선 박정인(42) 종로상회 대표를 최근 만났다. 종로상회는 지난해 33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는 감자탕 프랜차이즈 이바돔에서 13년 간 근무하며 외식 프랜차이즈 경험을 쌓았다. 함께 일하던 황위영(42) 부사장과 함께 이바돔을 나와 종로상회를 차렸다. 박 대표는 “쏟아지는 프랜차이즈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승부수가 필요했고, 국산 돼지고기를 아이템으로 정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재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전국의 돼지농가를 돌아다녔다. 하루에도 수십 곳을 다니며 삼고초려 한 끝에 지금의 유통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종로상회는 현지 농가에서 재료를 직접 공급받아 유통단계를 줄여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팔 수 있게 됐다.

  좋은 재료를 구하니 사업에 속도가 붙었다. 3년 만에 100호점을 돌파하며 파죽지세로 성장했다. 콘셉트는 정면돌파다. 종로상회에는 다른 가게와 같은 비법소스나 비법양념은 없다. 오로지 ‘좋은 고기’로 승부를 걸었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요식업계 트렌드는 빠르게 변합니다. 맛있는 요리를 개발해 인기를 끌어도 수명이 짧아요. 하지만 원천적인 재료가 좋은 음식점은 오래 갈 수 있다는 게 저의 믿음이자 경영철학입니다.”

  사업이 안정기에 접어들 무렵, 박 대표의 가슴은 되려 차갑게 식었다. 속도에 집중하는 사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 확장 속도에 스스로 제동을 걸었다. 폐업하는 가맹점주들이 눈에 밟혀서다. “프랜차이즈 업계에는 ‘3·3·4 법칙’이란 게 있어요. 가맹점 10개를 내면 3개가 잘되고, 3개는 현상유지, 나머지 4개는 폐업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죠. 어렵게 우리 파트너가 됐는데 폐업을 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힘들었어요.”

  2013년 종로상회는 가맹사업을 사실상 접었다. 속도는 더뎌도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직영점 위주의 전략으로 선회했다. 지난해까지 18개의 종로상회 직영점이 생겼다. 올해 5개의 매장을 더 열 계획이다. 모든 매장이 적자 없이 알토란 같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매장의 콘셉트도 작은 규모의 돼지고기 주점에서 ‘가족이 함께하는 외식 공간’으로 바꿨다. 뜨거운 불이 오가는 매장에서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놀이방을 만들었다. 매장 한 켠에 4~5개 테이블이 들어갈 만한 공간을 마련하고, 놀이기구는 모두 친환경 소재로 꾸몄다. 가족 단위 고객의 호평이 이어졌다. 박 대표는 “성장과 속도는 비례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말했다.

  직영점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선 공동창업자인 황 부사장의 역할이 커졌다. 전국을 돌면서 입지가 좋은 곳을 찾고, 새로운 매장 문을 여는 일은 황 부사장이 도맡았다. 대신 박 대표는 유통망 구축과 해외 지점을 내는 일을 챙기고 있다. 종로상회는 현재 미국 뉴욕에 2개, 중국 상하이에 2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올 5월에는 미국 뉴저지에 또 하나의 매장이 문을 연다. 해외에서의 반응도 좋다. “처음에는 고객의 90% 이상이 한국 교포들이었는데, 지금은 한국인과 외국인의 비율이 6대4 정도가 됐다”는 게 박 대표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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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인 종로상회 대표 [사진출처:중앙포토]

직원 모두가 창업하는 그날까지…
그는 계획을 묻는 질문에 “직원이 주인인 회사를 만들겠다”고 답했다. “저는 프랜차이즈의 3요소로 매출·수익·사람을 꼽습니다. 매출과 수익은 안정세에 접어들었으니 앞으로는 사람을 챙겨보려고 해요. 제일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고요. 특히 직원이 회사와 함께 성장하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문을 연 전주 아중 직영점에서 그의 이런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이 지점의 주인은 13명의 종로상회 직원이다. 종로상회에 근무한 지 1년이 넘은 직원 중 희망자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직원복지 차원에서 계획한 일이다. 1인당 2500만원 정도의 지분을 투자해 매장을 열었다. 투자금이 부족한 직원에게는 회사가 보증을 서서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매장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지분 비율에 따라서 균등하게 배분한다. 직원들은 기존에 받던 월급에, 투자에 따른 수익까지 얻을 수 있다. 13명의 직원들은 지금까지 월 평균 1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렸다. 올 5월에는 전남 순천에 제2호 직원 직영점이 문을 연다. 아중점보다 많은 23명의 직원이 참여했다. 현재 입지를 선정하고 점포 계약하는 일이 끝나고, 매장 공사가 한창이다.

  직원들은 수익을 얻고, 회사는 더 큰 것을 얻었다. “투자의 경험이 직원들을 회사의 진짜 주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시키는 일만 하던 직원들이 능동적으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1년 중 무슨 달에 손님이 많고, 일주일 중 어떤 요일에는 왜 손님이 없는지를 곱씹어봅니다. 가게에 물건이 언제 들어오고 얼만큼의 비용이 발생하는지도 관심을 갖죠. 투자한 매장에서 발생하는 매출과 비용에 따라 매달 받는 돈이 달라지니까요. 회사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이해하기 시작하니 이제는 적재적소에 필요한 일을 해요.”

  박 대표는 한 발 더 나아가 “직영점 경험을 바탕으로 직원이 창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원들은 자신의 돈이 투자금으로 들어간 만큼 매장의 계약단계부터 모든 일에 관여한다. 입지를 선정하는 일부터 건물을 임대하고 사업자 등록 서류까지 챙긴다. 이것이 나중에 자신의 회사를 여는 데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는 게 박 대표의 생각이다. “프랜차이즈를 경험한 제가 창업을 했듯 직원들도 더 큰 꿈을 꿨으면 좋겠어요. 저는 지금도 이바돔에 관여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서로 돕고 있습니다. 좋은 직원이 없어지는 것은 아쉽지만, 더 좋은 사업 파트너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박성민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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