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의 세계] 4. 생분해성 폴리에스테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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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녹말.단백질.면.비단 등은 인류가 오랫동안 식품이나 재료로 사용해 온 천연 고분자 물질들이다.

이제는 이들 목록에 박테리아들이 만드는 '생분해성 폴리에스테르'를 더 첨가해야 한다. 뭉뚱그려 '박테리아 중합체'라고도 불리는 PHB나 PHBV가 바로 이런 생분해성 폴리에스테르다.

이 물질은 '알칼리젠스 유트로푸스''슈도모나스 뮬티보란스'등 이름도 복잡한 박테리아들이 자신의 몸 속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수단으로 합성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성질은 틀림없는 플라스틱이고, 게다가 자연적으로 분해도 되는 환경친화적 물질이다. 수술용 실 등 화학자들이 합성해낸 생분해성 플라스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아예 합성까지 자연에 맡긴 작품이다.

현재 바이오폴이라는 상품명으로 영국의 제네카(전 ICI사)가 연 1천여t을 생산하고 있으며, 소비량도 점차 늘고 있다. 이밖에 독일의 바스프, 오스트리아의 페트로케미다뉴비아도 미생물 폴리에스테르를 개발하고 있다.

이웃 일본에서는 미쓰비시 가세이가 PHBV를 생산하여 비타민 등 일부 약병을 제조하고 있다. 단지 이 환경친화적 플라스틱을 만들려면 값비싼 글루코스(포도당).발레르산 등을 박테리아에 먹여야 하므로 아직은 가격이 비싼 흠이 있다.

박테리아 폴리에스테르의 가격은 ㎏당 3.5달러 정도로 흔히 사용하는 PET 폴리에스테르보다 세배나 비싸다. 역사적으로는 지금으로부터 80여년 전 1925년에 이미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진이 일부 박테리아가 탄수화물을 식량으로 하여 PHB를 합성한다는 것을 발견하였으나, 이 발견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다 70년대 세계가 석유파동을 경험한 후 이들 박테리아 플라스틱에 관한 관심이 커지게 되었다. 석유 없이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것이었기 때문이다. 영국의 ICI는 이점에 착안하여 20여년간 연구를 거듭한 끝에 90년대 들어 양산에 성공했다.

합성 플라스틱 대부분은 석유화학 제품으로 고갈되어 가고 있는 석유에 그 원료를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인류는 현재 석유의 90% 정도를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석유소비량을 줄여나가지 않으면 한 세기 후에 다가올, 석유화학공업이 사라진 인류의 생활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따라서 비분해성 쓰레기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합성 플라스틱의 대체 재료로 환경친화적이며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플라스틱의 생산 및 이용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박테리아 폴리에스테르에 덧붙여 다른 여러 가지 환경 친화적, 천연물 고분자의 응용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녹말이나 천연 단백질로 플라스틱을 만드는 것 등이 대표적 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광합성을 통해 포도당을 합성하는 식물 잎에 박테리아의 유전자를 주입해 식물 잎을 PHB 등의 합성공장으로 사용하는 연구도 미국의 몬산토사와 우리나라의 임업연구원 등에서 하고 있다.

진정일 고려대 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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