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옥·최은희 납북 지시” 김정일 육성에 선댄스 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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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인과 독재자’에 나오는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가운데)과 신상옥 감독(왼쪽), 배우 최은희 의 사진. 1984년 께로 추측된다. [사진 Hellflower Film Ltd.]

북한에 납북됐다 8년 만에 탈출한 신상옥 감독과 배우 최은희 부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연인과 독재자(The Lovers and the Despot)’가 미국 유타주 파크 시티에서 31일(현지시간)까지 열리고 있는 2016 선댄스 필름 페스티벌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캐넌 감독 ‘연인과 독재자’첫 공개
최 “가방 속 녹음기 숨겨 몰래 녹음”
일반 상영회 등 입장권 모두 매진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아 충격” 반응

두 명의 영국 출신 감독 로버트 캐넌과 로스 애덤이 제작해 월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에 초청된 ‘연인과 독재자’는 단번에 영화제 최고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지난 22일과 23일 열린 프리미어와 일반 상영회가 만석을 기록했고, 언론 및 영화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열린 상영회도 관객이 몰려 상당수가 입장을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남은 세 번의 일반 상영회 역시 일찌감치 표가 동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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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는 방대한 양의 인터뷰를 통해 1978년 납북에서 86년 탈출까지의 전말을 파헤쳤다. 최은희씨와 자녀들, 당시 사건을 조사했던 홍콩 수사관과 미 국무부 관계자, 전직 CIA 요원, 탈북 시인과 해외 영화 평론가들의 증언이 생생하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납치를 언급하는 육성이 녹음 테이프를 통해 공개돼 현지 반응이 뜨거웠다. 김정일 위원장이 “내가 두 사람을 우리 쪽으로 건너오게 하라고 지시했다” “우리도 장례식처럼 늘 우는 영화 말고, 국제적 영화제에 나갈 만한 영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내용이다.

신상옥 감독이 탈출에 실패하고 수년간 감옥살이를 하며 고문을 받았다고 하자 김 위원장이 “아랫사람들이 착오가 있어 생긴 일”이라고 답하는 부분도 있다.

다큐에서 최은희씨는 이 녹음 테이프에 대해 “나중에 남한으로 돌아가게 되면 아무도 우리 얘기를 믿지 않을 테니 증거가 필요하다는 신 감독의 말을 듣고, 가방 속에 녹음기를 갖고 들어가 몰래 녹음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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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캐넌, 로스 애덤 감독은 “오래전 이 믿기지 않는 사건에 대해 들었을 때부터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취재를 하며 여전히 너무 많은 진실이 감추어져 있단 사실에 놀랐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최은희씨와 가족을 설득하는 데 2년이 걸렸다”며 “아직도 모든 게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최대한 편견 없이 정의롭게 진실을 말하겠다고 설득해 가족의 마음을 돌렸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취재를 위해 북한과 미 CIA에도 연락을 취했지만 답변을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영화를 통해 사건을 처음 접한 현지 반응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다.

영화매체 스크린데일리는 “영화를 보고 테이프 속 음성을 듣기 전까지는 절대 믿을 수 없는 지어낸 이야기처럼 느껴질 정도”라며 “경악할 만한 내용”이라고 평했다. “핵실험으로 인해 북한이 또다시 뉴스의 중심이 된 이때에 많은 관심을 받을 만한 작품”이라고도 했다.

솔트레이크 트리뷴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내용”, 플레이리스트는 “마치 스파이 스릴러 같은 다큐멘터리”라는 반응을 내놨다.

‘연인과 독재자’ 제작진은 이번 선댄스 필름 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주요 영화제를 거쳐, 극장 배급이나 TV 방영 등을 통해 영화를 널리 소개할 계획이다.

미국 유타 파크시티=LA 중앙일보 이경민 기자 rache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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