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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일성록을 쓸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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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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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빈 한국고전번역원 이사장

“1760년 1월 11일(정사)

상(임금·영조)께서 숭문당에 나아가 주강(晝講)을 행하셨는데, 내가 시좌하여 소학(小學) 입교편(立敎篇)을 강하였다. 상께서 쇄소(灑掃)가 무슨 뜻인지 물으시기에 ‘비질하는데 먼저 물을 뿌리는 것은 먼지가 장자(長者)를 더럽힐까 두려워서입니다’고 답했다. 상께서 이르시기를 ‘먼지가 장자를 더럽히면 어떻게 되나’고 물으시기에 ‘불경하기 때문입니다’고 답했다. 상께서 이르시기를 ‘8세에 물을 뿌려 비질하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어려서부터 수고를 익히면 나이가 들어 방자하고 태만해질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제왕가는 더욱 쉽게 방자해진다. 너는 유념하여 경계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고 하시며 ‘내가 지금 대답을 들으니 전에 비해 크게 나아졌다’고 하교하시었다.”

“1776년 3월 1일(임신)

비가 내렸다. 밤 5경 측우기 수심이 3푼이었다.”

“3월 5일(병자)

묘시에 상이 경희궁 집경당에서 승하하시었다. 내가 상복(上服)을 벗고 머리를 풀어 헤쳤다. 소복을 입은 다음 소매를 걷었다. 중궁전 혜빈궁 세손 빈궁이 모두 관과 상복을 벗은 뒤 머리를 풀어 헤쳤다. 소복을 입고 곡하면서 극진히 애도하였다.”

정조가 세자 때와 즉위 원년에 쓴 일기 첫 대목은 부왕 영조로부터 배운 내용을 자세히 적고 있다. 군주 입장에선 비가 많이 와도 큰일이고 적게 와도 낭패다. 그의 일기는 강우량을 적으면서 시작하고 정사에 내린 결정과 지시사항이 구체적이고 세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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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어려서부터 일기를 썼다. “비록 바쁘고 번거로운 중에도 반드시 취침 전에 기록하여 일삼성(日三省)의 뜻에 부응하였으나 다만 반성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력(心力)을 보고자 하였다”고 그는 말했다. 밤에는 하루에 한 바를 점검하고 연말에는 한 해의 한 바를 점검했다. 자신의 반성을 위해 시작했던 개인의 일기가 국왕이 되면서 국정의 득실과 편부(便否)를 점검하고 반성하는 나라의 일기로 발전한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 조선은 기록의 나라다. 정조가 쓰기 시작한 『일성록』이 순종까지 이어지면서 총 2327책에 달하는 방대한 자료로 남았다. 이 중 정조대 부분만 한국고전번역원에 의해 최근 완역됐다. 『일성록』이 임금의 일기 형식 사료라면 『조선왕조실록』은 역사 전문가들이 각종 사료를 섭렵해 집필한 관찬(官撰) 역사서다. 조선 태조부터 철종까지 모든 사료를 망라하고 참고해 사관이 엄정한 관점에서 집필한 국왕의 통치 기록이다. 여기에 국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빠짐없이 기록한 『승정원일기』가 있고 사회 경제 관련 자료가 수록된 『비변사등록』도 있다. 광해군부터 고종까지 등록 273책이 남아 있다.

이런 기록들은 무얼 뜻하는가. 현재 일어나는 중요 사항들을 기록해 후대에 귀감이 되도록 전하자는 데 그 첫 번째 이유가 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나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또한 이런 뜻에서 출발한다.

조선왕조가 이렇듯 통치의 기록들을 여러 형태로 나눠 기록하고 보존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막강한 왕권을 자제하고 통제하는 장치로서 역사 기록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신권이 왕권을 감시하고 제압하려는 수단으로서 역사서가 동원됐다는 사실이다. 권력에 대한 자계(自戒)와 경계. 누군가 임금을 주시하고 기록하며 후대에 기록으로 영원히 남겨진다고 생각할 때 권력자의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겠는가. 해서 이런 자계와 경계의 역사서 때문에 군왕과 지도자들은 스스로를 삼가고 바른 길을 가고자 노력했을 것이다. 기록을 통해 스스로를 경계하겠다는 군주의 의지, 여기에 정조의 위대함이 있고 조선왕조의 힘이 있다.

많은 전직 대통령과 정치지도자가 숱한 회고록과 전기를 쏟아내고 있다. 대부분 세월이 한참 흐른 뒤 쓰인 회고록이다. 고금동서 어떤 정치인의 회고록이나 자전이 자화자찬 아니었던 게 있었던가. 변명과 업적 나열, 요즘 말로 ‘뻥의 잔치’다. 진실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정치적 결단을 할 당시의 심경과 고뇌를 절절히 담은 그런 기록들이 있어야만 후세에 값진 교훈이 될 수 있고 잘못된 전철을 밟지도 않을 것이다.

대통령 통치기록관이 있었던 적도 있고 또 그와 유사한 조직이 어떤 형태로든 있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도자 자신의 솔직한 기록이다. 고담준론과 화려한 미문으로 가득한 그런 회고록이 아니라 하루하루의 진솔한 기록들을 보고 싶다.

일일삼성(一日三省)은 바라지도 않는다. 정치지도자들이 한 주에 한 번, 아니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스스로를 되돌아본다면 우리 현실이 이렇게 고단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정치가 이렇게 왜소하고 남루하지도 않을 게다. 대통령이 일성록을 쓰기 시작할 때 우리 정치가 한 단계 올라가지 않겠는가.

권영빈 한국고전번역원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