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홀 갔더니 해 저무네 … 18홀 도는 데 열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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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23면

눌라보 링크스의 티잉 그라운드는 인조잔디인데다 페어웨이도 맨땅으로 거칠고 험난하다. [중앙포토]

2009년 말 지구촌 골퍼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소식 하나가 전해졌다. ‘서호주와 남호주, 2개의 주에 걸친 전장 1368㎞의 세계 최장(最長) 코스 선보이다.’


2010년 초 개장한 호주의 눌라보 링크스GC는 기상천외한 골프 코스다. 이 코스는 18홀을 도는 데 보통 일주일 이상이 걸린다.


사실 전장이 그리 긴 코스는 아니다. 각 홀 티잉 그라운드부터 그린까지 거리를 합산한 총 전장은 파 71,6747야드(약 6169m)인 평범한 코스다. 기네스북에 전 세계 최장 골프장으로 올라 있는 중국 윈난성 리장의 제이드 드래곤 스노우 마운틴 골프장(8548야드·약 7816m)보다 1801야드나 짧다.


그러나 눌라보 링크스는 홀 간 이동 거리가 어마어마하다. 세계 최대 노천 광산인 수퍼 피트가 있는 서호주의 칼굴리부터 남호주의 해안 도시 세두나 사이의 중소 마을을 알리는 관광 프로젝트 일환으로 조성된 골프장이라서 한 홀을 돌려면 한 개의 마을을 지나쳐야 한다. 1368㎞의 전장이 말해주듯 홀 간 이동 거리는 평균 50㎞가 넘고 최대 200㎞가 넘는 곳도 있다. 말 그대로 ‘세계 최장 홀 간 이동 거리 코스’다. 차를 이용해 쉼없이 달리면 사나흘에 완주할 수 있지만 여유를 가지고 돌려면 족히 열흘은 걸리는 여정이다. 인도의 한 골퍼는 자전거를 이용해 18홀 코스를 도는 데 무려 석 달이나 걸렸다고 한다.


18홀을 라운드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남호주 세두나 골프장에서 티오프해 ‘세계 10대 사막 코스’로 꼽히는 서호주 칼굴리 골프장에서 마치든가, 서호주에서 출발해 거꾸로 도는 식이다. 각 홀은 눌라보 링크스GC를 위해 새로 조성된 곳도 있지만 대개는 기존 골프장의 한 홀이 눌라보의 한 홀이 되는 식으로 조성됐다. 한 홀을 친 뒤 차를 몰아 사막 사이를 뚫고 달릴 때 마주치는 거라고는 캥거루와 낙타 뿐. 그렇게 한 홀, 한 홀을 치다 보면 짧기만 한 하루해가 넘어간다. 제대로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스킷과 음료로 허기와 갈증을 달래야 하는 험난한 일정의 연속이다. 미국의 골프 전문인 골프닷컴은 지난해 이 골프장을 ‘세계에서 가장 기괴한 골프 코스’ 중 한 곳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저마다 다른 코스에 홀이 세워졌지만 코스에는 공통점이 있다. 링크스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전혀 링크스럽지 않다. 인조 잔디가 입혀진 티잉 그라운드는 딱딱하기 이를 데 없고, 페어웨이는 잔디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맨땅이다. 그린에는 모래에 폐유를 뿌려 잔디 흉내를 낸 것이 대부분이다. 볼이 너무 멀리 날아가면 맨땅이나 나무를 맞고 자취를 감춰버리고, 그린 주변 울퉁불퉁한 맨땅은 어김없이 미스 샷을 내도록 만든다. 그래도 이곳에서는 볼이 놓인 그대로 샷을 해야 한다. 몸과 클럽은 흙투성이로 엉망진창이 되지만 이 또한 ‘자신과의 싸움’인 골프가 가진 매력이다.


이곳을 방문하는 골퍼들은 한 홀 라운드를 마칠 때마다 50 호주달러(약 4만2000원)짜리 스코어 카드의 빈 칸에 작은 스탬프를 받을 수 있다. 그렇게 스탬프가 한 개씩 늘어나 18개의 빈 칸이 모두 채워지면 기념비적인 라운드도 끝난다. 그러나 맨땅의 이 코스는 ‘호주의 백상어’ 그렉 노먼(61)이 와도 울고 갈 만큼 난이도가 만만치 않다. 눌라보 링크스의 자료에 따르면 골프장 개장 후 이곳에서 이븐파를 기록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이지연 기자 easygolf@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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