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핵 재처리했다던 북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 확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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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최근 영변에 있는 5㎿e급 원자로의 가동을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숙 외교통상부 북미국장은 18일 K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영변 5㎿e급 원자로의 가동이 중단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구체적인 내용은 계속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다른 정부 고위 당국자도 이날 "미국이 한반도 상공에서 운영 중인 정찰위성을 통해 포착한 영변 핵시설과 주변의 움직임, 5㎿e급 원자로 콘크리트 벽의 온도, 보일러에서 나오는 수증기 발생 상황 등을 종합해 정밀 분석한 결과 영변의 원자로 가동이 이달 들어 중단된 것으로 결론내렸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현재 우리 정부는 상황이 전개되는 과정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다"며 "이 문제를 포함한 일련의 북한 핵 활동에 대해 한.미 간에 거의 실시간대로 긴밀한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변 5㎿e급 원자로는 1976년 착공돼 86년 본격 가동에 들어갔으며, 94년과 2002년 두 차례에 걸친 북핵 위기에서 최대 핵심 변수로 작용해 왔다.

특히 북한은 2003년 이 원자로에서 빼낸 8000여 개의 사용후 핵연료봉을 모두 재처리해 핵무기화했다고 공언하고 있다.

박신홍 기자

[뉴스 분석] 플루토늄 추출 으름장 미국과 직접 대화 노려

북한의 영변 5㎿e급 원자로 가동 중단은 대미 압박용으로 보인다. 고장으로 중단됐을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북한 원자로는 남한의 대형 경수로처럼 과부하로 고장 날 확률이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결국 관심은 북한의 의도가 단순한 으름장이냐, 아니면 사용후 핵연료(Spent Fuel)를 빼내 재처리하는 것이냐이다. 5㎿e급 원자로에 장전된 사용후 핵연료는 핵연료봉 8000개 속에 50t 정도 들어 있다. 이를 모두 재처리하면 12~18㎏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 핵무기 2~3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다.

만일 북한이 사용후 핵연료를 분리해 냉각한 뒤 방사화학실험실로 옮겨 재처리하면 크립톤 원소가 공기에 유출돼 외부에서 알 수 있다. 북한이 올 여름 이후 본격적으로 재처리를 시작하면 한반도에는 또 한 번의 긴장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이 이를 뻔히 알면서도 원자로의 전원 스위치를 내린 것은 어떻게든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여기에 북한은 스스로 해법까지 제시하고 있다. 최근 방북한 셀리그 해리슨 미 국제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을 통해 "북.미 대화가 성사될 경우 현 수준에서 핵 동결이 가능하다"는 대미 메시지를 보낸 게 그것이다.

이런 가운데 정부 당국자들은 상황이 긴장 국면으로 가는 것을 막으려 애쓰고 있다. 당국자들은 "예상했던 카드"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2월 10일 북한의 핵보유 선언 이후 추가 조치 가능성에 대비해 왔고 이번 가동 중단도 그중 하나라는 것이다. 첫째 예상카드였던 군축회담 요구는 3월 31일 나왔으며 이에 대해 한.미 양국이 무시하는 정책으로 일관했던 만큼 이번에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럴 경우 북한은 ▶가동 중단된 원자로에서 연료봉 꺼내기▶폐연료봉 재처리하기▶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 추출하기 등 일련의 과정을 밟아가며 압박 수위를 점차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미국의 반응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측의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한.미 공통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접점이 쉽사리 마련되지는 않을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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