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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스타트업에서 한국경제 미래 찾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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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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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이사

낡은 질문으로 미래를 위한 답을 구할 수는 없다.

 최근에 패널로 참석했던 한 포럼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고 있다. 이를 치유할 수 있는 신산업 발굴 방안이 무엇인가.’ 질문의 진정성은 이해하지만 이미 낡은 질문이다.

 그 질문과 답이 절실했던 때가 있었다. 1962년부터 1986년까지 5차에 걸쳐 추진 되었던 경제개발계획은 그 기간 동안 1인당 국민총생산을 18배나 뛰게 했다. 특히 2차와 3차 계획 기간 동안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던 주력 산업은 한국이 개발도상국에서 경제선진국의 반열에 올린 결정적인 토대가 되었다. 철강·자동차·조선·전자·석유화학·기계산업 분야 등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중추다. 계획경제의 성공 방정식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인지, 혹은 나라의 주력 산업들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우려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신산업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여전히 단골 질문이다.

 김대중정부의 일명 ‘G7프로젝트’에서부터 시작된 새 산업 찾아 나서기는 현 정부에 와서도 지속되고 있다. ‘성장동력’이라는 주제어는 그대로 둔 채 ‘차세대’, ‘신’, ‘미래’라는 접두사만 바꿔가며 정부와 민간이 십수년 간 새로운 성장 산업 분야를 발굴하기 위해 쏟아 부은 투자는 총 20조원에 이른다. 하지만 각 정부가 선정한 성장 동력들 중에 예를 들어 ‘녹색금융’ 같은 것은 그 개념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드론’이나 ‘빅데이터’는 과연 한국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분야인지도 모르겠다. ‘그 질문’이 유통기한이 지난 낡은 질문이 돼버리는 대목이다.

 전기·통신·도로·물류가 없는 나라에서 전자상거래 산업의 활성화는 공염불이다. 계획이 의미가 있고 유효한 시기가 있다. 제한적인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과 나라 경제의 근간과 토대가 될 분야를 성장시키기 위해 우선 순위를 정하는 것은 상당히 효율적인 방식이다. 중국은 ‘중국제조 2025’와 같은 전략을 내세워서 새로운 산업의 중흥을 독려하고 있고, 인도의 모디 총리는 ‘디지털 인디아’라는 모토를 내세워 정보(IT)산업을 비롯한 신산업의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개발경제 전략이 한국의 과거 성공 방정식과 흡사한 이유는 너무 명확하다.

 경제의 기반은 계획으로 준비할 수 있지만, 창조적인 경쟁은 계획으로 승부를 걸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깨달을 때도 됐다. 엘리트 관료가 연구하고 학습해서 새로운 분야를 정하면, 기업들이 그 중에서 자신들의 구미에 맞거나 전략에 맞는 분야를 선택해 집중 투자하고 성장시키면 됐던 과거 경험에 근거해 십수년 간 쏟아 부은 20조원은 다 어디로 갔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카카오·라인·스마일게이트·쿠팡 등 몇 년 사이에 새롭게 등장해 성공의 궤적을 그려가는 스타트업들의 사업 분야는 정부가 정한 성장동력에는 있지도 않았거니와, 정부의 도움은 커녕 규제로 힘들어만 하는 기업들이다. 스스로 시작하고 스스로 성장해 수조 원의 가치를 만들고 있고, 대기업이 이 핑계 저 핑계로 사람들을 내보낼 때 이들은 지속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시선을 해외로 돌려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가 제안하고 있는 제조업 혁신 정책인 ‘리메이킹 어메리카’는 페이스북이나 우버와 같은 거대 디지털 기업의 성공과는 전혀 무관하다. 텐센트·알리바바·샤오미조차도 중국의 ‘자주창신(自主創新)’과 같은 계획경제 정책과 상관없이 스스로 길을 개척해 온 기업들이다. 미래에 대한 질문도 답도 한국·미국·중국의 성공한 스타트업들로부터 찾을 수 있는 셈이다.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장조사기관이나 미디어의 역할로 끝나야 한다. 말하자면 정보제공 서비스 정도인 것이다. 그 제공된 정보를 취하든 버리든 간섭하거나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한다. 시장에 무작정 맡겨 두라는 신자유주의적 접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기업가 스스로 판단하고 실천해 미래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면 결국 그들이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낡은 질문을 멈추게 할 최선의 답은 이것이 아닐까 한다. “성장동력은 ‘기업가’이고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산업은 ‘스타트업(業’)이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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